6번 국도로 지정되어 있는 대표적인 도로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에 밤 10시에 종을 쳐 통행 금지를 알리는 인정(人定)과 새벽 4시에 다시 종을 쳐 통행 금지를 해제하는 파루(罷漏)로 도성의 8대문을 여닫게 하던 종루(鐘樓)가 동서대로와 남북대로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뒤, 이 지점을 종루십자가(鐘樓十字街), 종루에서 4대문으로 통하는 길을 종로(鐘路) 또는 종길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종루가 세워졌던 지역 주변을 운종가(雲從街)라고도 불렀으며, 종로라는 명칭은 현재 도로 명칭으로 뿐만 아니라 동명, 구명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또한, 종로 1가에서 6가까지의 지역명으로도 쓰이며, 종로 2가 네거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하여져 도성이 건설될 당시 서울의 모습은 완전 계획 도시였다.
계획에 의하여 건설된 도성 내 대로는 영조척(營造尺)으로 폭 56척, 양옆의 수구(水溝)는 각각 폭 2척의 넓이로 이루어졌다. 종로는 동서를 횡단하는 도성 내 중요 간선도로인 대로였으나, 조선 후기로 오면서 도로변을 잠식하는 가건물 및 상점들이 늘어나 도로 폭이 점차 줄어들었다.
세종로(世宗路 : 경복궁에서 광화문까지의 남북대로)가 정치적 중심 지역이었던 것에 반하여, 종로는 육의전(六矣廛)을 비롯하여 많은 상점들이 분포하였던 상업지역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까지 지속되어 양품점·서점·제과점을 비롯하여 동대문 시장까지 분포하는 전형적인 상업지역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서울의 가장 번화가였으며 중심 도로였던 이 길에는 현대적인 교통 수단이 도입되면서 최초로 전차 노선이 부설되어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로서의 구실을 수행하였다.
1974년에는 이 노선에 지하철이 제일 먼저 건설되어 이 도로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켰으며, 현재도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서울의 중요한 상업지역이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