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문집 ()

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문신, 김광엽의 시 · 계 · 서(書)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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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김광엽의 시 · 계 · 서(書)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권두에 유도헌(柳道獻)의 서문, 권말에 김광엽의 10대손 김상학(金商學)과 권상규(權相圭)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9수, 계(啓) 15편, 차자(箚子) 2편, 권2에 서(書) 4편, 제문 1편, 증유시(贈遺詩) 12수, 부록으로 만사·제문·묘갈명·우곡서원봉안문(愚谷書院奉安文)·상향축문(常享祝文)·귀허집서(歸虛集序)·귀허집발(歸虛集跋)·우곡별묘고유문(愚谷別廟告由文)·유사략(遺事略) 등이 수록되어 있다.

계의 「청금수령설자녀재관가취계(請禁守令挈子女在官嫁娶啓)」는 지방 수령들이 성혼한 자녀들을 끌고 다니며 관가에 끼치는 폐단이 극심함을 지적하고, 이를 금할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청물통신일본계(請勿通信日本啓)」는 임진왜란을 치른 직후인데 일본에 우리가 먼저 통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아울러 국가의 방비 대책에 대한 의견을 적었다.

「응지청무성학친묘사휼민은납직언계(應旨請懋聖學親廟祀恤民隱納直言啓)」는 당시 모든 정사에 결여된 점을 거론하고, 그 대책을 진언한 것이다. 왕이 친히 묘사에 참례할 것, 백성을 위로하고 구휼할 것, 국민의 소리를 받아들일 것 등을 아뢰었다. 또한 왕이 구언(求言: 왕이 신하의 바른 말을 구함)에 성의가 없어 진언하는 사람이 없음을 지적하고, 오랫동안 경연을 중지해 중신들과 접견이 뜸했다고 진언하였다.

「청물차견근반계(請勿差遣跟伴啓)」는 당시 조정에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데 있어 전례에 없던 근반(跟伴: 비서)을 딸려 보내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계청이다. 「청물척대소신진사계(請勿斥大小臣陳辭啓)」는 신하들의 직언을 배척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국가 정책의 지표가 되는 글이다.

차자의 「청비어일본차자(請備禦日本箚子)」는 일본을 방어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올린 것이다. 서의 「상체찰사이공원익(上體察使李公元翼)」 역시 임진왜란 후의 혼란한 국정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을 건의하는 내용으로 이원익에게 보낸 글이다. 그밖에 「청섭정교환수계(請攝政敎還收啓)」는 선조가 섭정을 명한 것을 환수하라는 계청인데, 당시의 정치 사정을 살펴볼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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