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치막 ()

문경 최진일가묘 출토복식 중치막
문경 최진일가묘 출토복식 중치막
의생활
물품
조선시대, 왕실의 연거복 및 사대부의 편복으로 곧은 깃에 소매가 넓고 양옆에 트임이 있는 포(袍).
이칭
이칭
듕치막
내용 요약

중치막은 조선시대 왕실의 연거복 및 사대부의 편복 포로 문헌 기록과 유물은 16세기부터 보인다. 형태는 곧은 깃에 소매가 넓고 양옆의 무에는 트임이 있으며, 겨드랑이에는 삼각무가 달려 있었으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차 무와 삼각무가 사라지게 되었다.

정의
조선시대, 왕실의 연거복 및 사대부의 편복으로 곧은 깃에 소매가 넓고 양옆에 트임이 있는 포(袍).
연원

중치막(中致莫)에 관한 문헌과 유물은 16세기 중반부터 확인된다. 중치막이라는 명칭은 문헌에서 ‘中赤莫’, ‘中致莫’, ‘重赤莫’, ‘中超莫’, 듕치막 등으로 기록되었다. 중치막이 언급된, 왕과 관련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역대 『빈전도감의궤』, 『빈전혼전도감의궤』 「삼방의궤」에 있으며, 왕세자의 중치막에 관한 기록은 『승정원일기』, 『빈궁혼궁도감의궤』 「삼방의궤」에 있다. 사대부들이 중치막을 착용한 기록은 『묵재일기』, 『쇄미록』, 『순천김씨 언간』, 『현풍곽씨 언간』, 『홍재전서』, 『상례언해』』, 『사례편람』, 『광례람』, 『숙재집』 등에 있다. 이렇게 다양하게 착용하던 중치막은 1884년(고종21)에 주5주9, 주6, 주7, 주8 등을 금지하는 사복(私服) 제도를 개정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형태 및 용도

중치막의 형태는 곧은 깃에 소매가 넓고 가 달려 있으며 양옆에 트임이 있다. 겨드랑이에는 삼각무가 달려 있었으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차 무와 삼각무가 사라지게 되었다. 왕의 중치막 착용 용도는 주1, 주2, 주3, 주10 주11였으며, 또한 이것은 주12주13을 재중수할 때의 주15로 사용하였다. 직물은 단(緞), 능(綾), 주(紬) 등이며, 무늬는 주16, 운보문(雲寶紋), 주17 등을 사용하고, 색상은 옥색, 남색, 초록색이었다. 세자의 중치막 착용 용도는 문효세자의 습과 소렴에 관한 기록으로 알 수 있으며 직물은 단과 주를, 색상은 자적(紫赤), 연두, 옥색, 남색 등을 사용하였다. 사대부들은 관복과 다른 포(袍)의 주18이나 평상복, 염습의로 사용하였으며, 직물은 주19를, 색상은 청색 계열과 소색(素色) 계열을 입었는데 실제 착용한 모습은 회화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천 및 현황

중치막의 유물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6세기 유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59호로 지정된 ‘문경 최진 일가 묘 출토복식’에 있는 주20 주21 중치막이다. 이 옷에 대한 왕의 유물로는 해인사 성보 주22에 소장된 국가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광해군(光海君,1575~1641)의 주23 운보문단(雲寶紋段)으로 만든 솜 중치막이 있다. 사대부들의 중치막 유물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출토 유물과 전래 유물 등이 많이 있다. 유물은 16세기에 처음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17세기는 유물이 가장 많이 있어 이 시기에 중치막이 가장 널리 착용한 것을 알 수 있으며, 18세기에서 19세기로 갈수록 유물의 수량은 적어진다. 유물의 유형은 홑, 겹, 솜, 누비 등 다양하였다.

시대에 따라 형태는 , 소매의 모양, 주24, 무, 겨드랑이의 삼각무가 변화하였다. 깃의 형태는 이중 칼깃, 주25, 목판(木版) 당코 주26에서 점차 둥근 깃으로 변화하였으며, 소매의 모양은 주27 형에서 두리 주28 형으로 변화한 후 주29 형으로 되었다. 겉섶의 너비는 초반에는 넓어 이중 섶이었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너비가 좁아져서 단일 섶으로 변하였다. 양옆에 있는 무는 사다리꼴에서 삼각형으로 변화한 후 17세기부터 점차 사라지게 되었으며, 겨드랑이의 삼각무은 무의 형태 변화에 따라 같이 사라지게 된다. 중치막을 착용할 때는 머리에는 주30을 쓰고 허리에는 주4를 띠었다.

참고문헌

원전

『광례람(廣禮覽)』
『묵재일기(默齋日記)』
『빈전도감의궤(殯殿都監儀軌)』
『빈전혼전도감의궤(殯宮魂宮都監儀軌)』
『사례편람(四禮便覽)』
『상례언해(喪禮諺解)』
『쇄미록(瑣尾錄)』
『숙재집(肅齋集)』
『순천김씨 언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현풍곽씨 언간』
『홍재전서(弘齋全書)』

단행본

옛길박물관, 『중치막 자락에 깃든 사연』(민속원, 2010)
『한국의식주생활사전』(국립민속박물관, 2017)

논문

금종숙, 「조선시대 중치막(中致莫)의 착용례와 형태 연구」(『복식문화연구』 22-5, 복식문화학회, 2014)
주석
주1

쑥이나 향나무 삶은 물로 시신을 씻긴 뒤 옷을 갈아입힘. 우리말샘

주2

운명한 다음 날, 시신에 수의를 갈아입히고 이불로 쌈. 우리말샘

주3

소렴을 한 다음 날, 입관을 위해 수의를 갈아입히고 이불로 싼 시신을 베로 감싸서 매듭을 지음. 우리말샘

주4

가느다란 띠. 우리말샘

주5

통이 넓은 소매. 우리말샘

주6

조선 시대에, 무관이 입던 웃옷. 깃이 곧고 뻣뻣하며 소매가 넓다. 우리말샘

주7

벼슬아치가 평상시에 입던 웃옷. 소매가 넓고 뒤 솔기가 갈라져 있다. 우리말샘

주8

남자의 여름 홑바지. 우리말샘

주9

예전에, 통상예복으로 입던 남자의 겉옷. 소매가 넓고 등 뒤에는 딴 폭을 댄다. 우리말샘

주10

왕, 왕대비, 왕비, 왕세자 등의 시신을 넣던 관. 우리말샘

주11

임금의 옷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12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에 있는 절.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 수다라전(修多羅殿), 법보전(法寶殿)에 8만 1258매의 대장경 경판을 소장하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중건한 것이다.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되어 있다. 우리말샘

주13

해인사에 있는, 고려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각. 남쪽의 수다라전(修多羅殿)과 북쪽의 법보전(法寶殿)이 있으며, 서쪽과 동쪽에는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중창하였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 대사가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국보 정식 명칭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다. 우리말샘

주14

중앙 관서와 궁중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여러 군현에 부과하여 상납하게 한 특산물. 전통 세제(稅制)인 조(租)ㆍ용(庸)ㆍ조(調) 가운데 조(調)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간 관리의 부정으로 문란해지자 16세기에 이이, 유성룡 등이 쌀로 받게 하는 수미법을 주장하였으나 실시되지 않았고 광해군 즉위년(1608)에 이르러 경기 지역부터 대동법이 처음 실시되었고, 숙종34년(1708)에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우리말샘

주15

신령이나 부처 앞에 바치는 물건. 우리말샘

주16

용을 그린 오색의 무늬. 우리말샘

주17

포도알 모양의 무늬.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여 의류나 가구 따위에 이용된다. 우리말샘

주18

겉옷 안에 끼어 입은 옷. 우리말샘

주19

명주실로 무늬 없이 짠 천. 우리말샘

주20

청금석의 빛깔과 같이 검은색을 띤 푸른색. 우리말샘

주21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줄이 죽죽 지게 박는 바느질.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 우리말샘

주22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 내에 있는 박물관. 해인사에 보관하던 불교 유물과 왕실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ㆍ관리ㆍ전시하기 위하여 2002년에 개관하였다. ‘해인사 영산회상도’, ‘합천 해인사 감로왕도’, ‘해인사 동종(海印寺銅鍾)’, ‘합천 해인사 건칠 희랑 대사 좌상(陜川海印寺乾漆希朗大師坐像)’ 등 많은 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전시실, 유물 수장고, 학예실, 세미나실, 대장경 인경 체험 코너, 괘불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우리말샘

주23

엷은 청색. 우리말샘

주24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겉자락에 댄 섶. 우리말샘

주25

한복 상의 부분에서, 여밈 끝이 목둘레선을 따라 둘러지는 깃. 목선 쪽은 직선이고 앞쪽은 곡선으로 되어 있어, 두 선이 깃의 끝에서 만나는 부분이 칼 모양처럼 뾰족하다. 우리말샘

주26

한복의 상의 부분에서, 여밈 끝이 버선코처럼 뾰족한 모양의 깃. 조선 시대 중기 이후에 유행한 깃의 모양이다. 우리말샘

주27

좁은 소매. 우리말샘

주28

한국 전통 소매 중 직선 배래의 하나. 소매통이 넓으며 소맷부리의 위에서 18~22cm가량 터지고 아래로는 막힌 모양이다. 우리말샘

주29

통이 넓은 소매. 우리말샘

주30

옻칠을 한 갓. 어두운 흑갈색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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