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 과거시험으로 식년시와 마찬가지로 소과(小科)·문과·무과·잡과 등이 시행되었다.
1401년(태종 1)에 처음으로 실시된 증광시는 본래 임금의 등극을 축하하는 의미로 즉위년 또는 그 이듬해에 실시하던 것이었으나, 선조 때부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실시되었다. 증광시는 식년시와 똑같이 운영되었다.
예컨대, 증광문과의 경우에는 식년문과와 똑같이 초시·복시·전시 등 세 단계의 시험이 있었으며, 그 선발인원도 식년문과와 똑같이 초시에서 240인, 복시·전시에서 33인을 선발하였다.
고시관도 초시·복시·전시를 막론하고 식년문과와 똑같았다. 고시과목은 초시·전시는 식년문과와 같았으나 복시만은 달라 초장(初場)에 부(賦) 1편, 표(表)·전(箋) 가운데 1편, 종장(終場)에 대책(對策)을 시험하여 사서삼경의 강경(講經)이 없었다.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