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자표기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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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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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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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내용

한자차용표기법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전에 향찰(鄕札)·이두(吏讀)·구결(口訣)·고유명사표기라고 구분하여 오던 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한자를 차용하는 방법은 한자의 음과 훈 중 어느 것을 차용하느냐에 따라 ‘음’과 ‘훈’으로 나뉘고, 또 이들을 한자의 본뜻에 맞게 사용하느냐, 본뜻을 버리고 표음적(表音的)으로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讀)’과 ‘가(假)’로 나뉜다.

이 방법이 복합되어 다음과 같은 차자체계(借字體系)가 나온다.

① 음독자(音讀字):한자를 음으로 읽고 그 본뜻도 살려서 차용한 차자.

② 음가자(音假字):한자를 음으로 읽되 그 본뜻을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

③ 훈독자(訓讀字):한자를 훈으로 읽고 그 본뜻도 살려서 차용한 차자.

④ 훈가자(訓假字):한자를 훈으로 읽되 그 뜻은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

이는 표의문자적 성격과 표음문자적 성격이 복합된 것으로 표의자로 차용된 차자를 독자(讀字), 표음자로 차용된 차자를 가자(假字)라고도 부른다. 차자 가운데는 독자와 가자의 중간에 드는 것이 있어 독자이되 가자의 성격을 띠는 것을 의독자(擬讀字), 가자이되 독자의 성격을 띠는 것을 의가자(擬假字)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독’과 ‘가’의 원리가 적용된 다음에 수의적(隨意的)으로 적용되는 이차적인 것이다. 음독자와 훈독자는 필요하면 한문에서 언제나 빌려다 쓸 수 있으므로 그 수를 한정할 수 없으나, 음가자와 훈가자는 한정된 수로 이루어진 체계를 가진다. 자주 쓰이는 가자들은 다음과 같다.

加(가) 居(거) 去(거) 古(고) 高(고) 果(과) 斤(근) *厼(금) 只(기) 介(개) 乃(나) 那(나) *汝(너) 奴(노, 로) 尼(니) *斤(ᄂᆞᆯ) 多(다) *如(다) *加(더) 丁(뎌, 뎡) 刀(도) 道(도) 豆(두) *置(두) *月(ᄃᆞᆯ) *冬(ᄃᆞᆯ) *等(ᄃᆞᆯ·들) 知(디) 羅(라) 良(라) 老(로) *以(로) 陵(르) 里(리) 立(립) 來(ᄅᆡ) 亇(마) *休(말) *味(맛) 毛(모) 勿(믈) 彌(미, 며) 每(ᄆᆡ) *所(바) 朴(박) 甫(보) 夫(부) *火(블) 非(비) 沙(사) 所(소) 數(수) 示(시) 時(시) 賜(ᄉᆞ) 史(ᄉᆞ) 士(ᄉᆞ) *白(ᄉᆞᆲ〉ᄉᆞᆸ) 參(ᄉᆞᆷ) 阿(아) *良(아) 也(야) 於(어) 余(여) 亦(여, 이) 五(오) 烏(오) 臥(와) 隱(은) 乙(을) 音(음) 邑(읍) 衣(의) 矣(의) 伊(이) 召(조) 之(지) 叱(즐) 齊(졔) 吐(토) 何(하) 乎(호) 屎(히) 兒(ᅀᆞ) 耳(ᅀᅵ)(*표는 훈가자)

이 체계는 시대나 개인 또는 문체에 따라 달라지므로 유동적이다. 가자는 원칙적으로 1음절을 표기하므로, 2음절의 훈을 가진 차자도 훈가자로 쓰일 때에는 1음절을 표기하는 차자로 바뀐다(加의 훈은 ‘더으-’인데 훈가자로서는 ‘더’를 표기함). 그러나 다음의 가자들은 그 모음이 탈락되어 음절말자음을 표기하는 데 쓰인다.

只(ㄱ) 隱(ㄴ) 乙(ㄹ) 音(ㅁ) 邑(ㅂ) 叱(ㅅ) 應(ㅇ)

차자의 표음은 음독자의 경우 그 시대 우리 나라의 한자음으로 읽히고, 훈독자는 우리말의 어형인 훈(새김)으로 읽힌다. 하나의 차자가 둘 이상의 훈으로 읽힐 수도 있고, 둘 이상의 차자가 하나의 훈으로 읽힐 수도 있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서 ‘草’는 ‘플’과 ‘새’로 읽혔고, ‘末’과 ‘粉’은 모두 ‘ᄀᆞᄅᆞ’로 읽혔다.

음가자도 대체로는 그 시대의 한자음으로 읽히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속음(俗音)으로 읽히는 것도 있다. ‘省’이 ‘소’로 읽히는 것이 그것인데, 이는 상대(上代)의 한자음일 가능성이 있다. ‘彌’는 『향약구급방』에서는 ‘미’로도 쓰였지만 전통적으로는 고대의 한자음으로 추정되는 ‘며’로 쓰이고 있다.

차자의 연결법칙은 어절(語節)을 단위로 하여 그 앞부분은 개념을 나타내는 음독자나 훈독자로 표기되고,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뒷부분은 음가자나 훈가자로 표기된다. 즉, ‘독자+가자’의 특징적인 표기구조를 가진다. 이 순서는 문장표기에서 특히 현저하게 지켜진다.

고유명사 표기와 같은 단편적인 단어의 표기에서는 가자만으로 표기되는 예가 많지만, 『향약구급방』의 향명(鄕名) 표기에서는 단편적인 단어의 표기임에도 이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차자의 연결순서에서 또 하나의 현저한 특징은 말음첨기법(末音添記法)이다.

‘明期’와 같은 표기는 ‘明’의 훈이 ‘ᄇᆞᆰ’이어서 그 말음에 ‘ㄱ’음을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데도 ‘期(긔)’가 이 말음을 중복하여 첨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明期’가 실제로 표기하고 있는 것은 ‘ᄇᆞᆯ긔’인 것이다. 이러한 말음첨기법은 수의적이어서 같은 작품 안에서도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차자표기자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다. 차자의 자체(字體)는 한자의 자체가 그대로 쓰인다.

우리의 독특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畓(논)’, ‘太(콩)’와 같은 우리 나라 한자를 새로 만들어 쓰기도 하지만, 자형상 한자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차자의 자체에서 중요한 것은 약체(略體)이다. 복잡한 자형에서 일부의 획만을 따서 사용한 것이 약체인데, 『균여전』에 쓰인 ‘⺾+廾(菩薩)’로 보아 차자표기뿐만 아니라 한문에도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보편적으로 쓰인 것은 구결의 토(吐) 표기에서이다. 약체는 정자체에서 따는 경우(阿→阝)와 초서체에서 따는 경우(爲→)가 있다.

필순(筆順)으로 보면 본자의 앞부분에서 따는 방법(衣→, 飛→飞)과 뒷부분에서 따는 방법(古→口, 叱→)이 있다. 같은 차자라도 따는 방법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羅’의 약체는 『구역인왕경구결(舊譯仁王經口訣)』에서는 앞부분을 딴 ‘’로 나타나지만, 후대의 구결에서는 그 속자인 ‘’의 뒷부분을 딴 ‘ᄉᆞ’나 ‘’가 주로 쓰였다.

이와 같이 일정한 방법으로 약체를 딴다는 것은 약체가 본자에 의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목적으로 쓸 때에는 주로 약체가 쓰이지만 공적인 문서나 인쇄문헌에서는 원칙적으로 정자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개중에는 관습적으로 사용되어오는 과정에서 그 정자와의 인연이 끊어져 약체가 하나의 차자로 굳어진 것이 있다. ‘尸(ㄹ)’과 ‘亇(마)’가 그것으로, 여러 자료에 쓰였지만 그 정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차자표기법은 지명·인명·국명 및 관명(官名) 등을 가자로 표기하는 고유명사 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한문의 가차자(假借字)를 사용하는 방법에서 온 것이다. 이 표기법은 우리 나라 최고(最古) 기록인 ‘광개토왕비문’에 이미 사용되었다.

삼국시대 금석문에 기록된 한문이나 초기 이두문에 나타난 것을 보면 신라·고구려·백제가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중국인들이 그들의 외래어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가차자나 일본의 초기 고유명사 표기자들과 대체로 공통되고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미 6세기 자료에는 우리의 고유한 용법인 훈가자가 쓰이고 있어서 이 고유명사표기법이 한국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삼국시대의 차자표기 문장은 속한문(俗漢文) 또는 변체한문(變體漢文)이라고도 불리는 이두문의 초기적인 문체이다. 이 문장에서는 후대의 이두에 해당하는 中(긔), 以(로), 之(이라) 등이 나타나고, 어순이 한문의 어순으로서는 어색하거나 완전히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되었다. 그러나 고유명사나 관명을 제외하고는 가자로 쓰인 토의 용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삼국통일 후인 8세기에 들어와서 토 표기가 나타나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데 가자가 쓰인다. 755년(경덕왕 14)에 기록된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자료로서 차자표기법의 중요한 사실들을 보여준다. 이 문장의 어순은 완전히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되었고, 토 표기가 발달하여 ‘독자+가자’의 표기구조가 나타난다.

또 ‘令只(시기+기→시기)’와 같은 말음첨기법도 보여주고 ‘厼(금)’과 같은 약체도 보여준다. 그러나 국어의 조사나 어미를 충실하게 표기하지 않고 있어서 전후문맥에 의하여 그 문법관계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어의 조사와 어미를 비교적 충실하게 표기한 향찰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있으나, 향찰이 갖추어야 할 표기법은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향찰표기법이 이미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는 설총(薛聰)의 시대보다 한 세대쯤 뒤이기 때문에 그와 이 표기법의 발달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차자표기법은 향찰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혼합된 표기법의 단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향찰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후반까지도 사용되었으나 그 사용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다. 이두와 구결, 고유명사 표기도 조선 후기까지 사용되었으나 역시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용되었다. 이 표기법을 통하여 얻은 국어표기의 경험과 전통은 훈민정음 창제의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참고문헌

『차자표기법연구』(남풍현,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1)
『향가해독법연구』(김완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고가연구』(양주동, 일조각, 1942·1965)
「신라시대의 표기법체계에 관한 시론」(이숭녕, 『서울대학교논문집』 2, 1955)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남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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