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창원여자고등학교 신축 부지 공사 중 유적이 확인되어 부산여자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독무덤 34기를 비롯하여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등 총 51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변한-가야에서는 성인을 토기에 묻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데, 창원삼동동유적은 독이 주를 이루는 점이 특이하다. 이렇게 독을 성인 무덤으로 사용하는 것은 일본 북부 규슈〔九州〕의 야요이〔彌生〕시대와 한반도 서남부 영산강 유역의 삼국시대 유적에서 확인된다.
창원삼동동유적의 독무덤은 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별도로 전용 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생활에 사용하던 토기를 그대로 이용하였다.
10호 독무덤의 경우, 큰 항아리 두 개의 입을 서로 맞추어 가로로 묻었는데, 총 길이 194㎝로 성인 남성도 무리없이 매장할 수 있는 크기이다. 대체로 전체 길이 1m 이상의 대형 독무덤이 중심을 이루지만, 60㎝ 내외의 소형 독무덤도 있기 때문에 유아나 어린이의 무덤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덧널무덤은 길이 2~3m, 너비 1m 이하로 크지 않고, 유물도 머리쪽에 짧은목항아리와 같은 토기나 쇠화살촉 정도로 빈약하다. 돌덧널무덤은 널돌을 촘촘히 세워 만든 것으로 일반적인 가야의 돌덧널과는 다른 점이 특징이다. 평면 형태가 머리쪽은 넓고 발쪽은 좁은 형태가 많다. 이러한 무덤 형식의 차이는 시기적이라기보다는 동 시기에 계층 차이에서 비롯된 사회 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독무덤은 컵형토기 같은 소형 토기와 수정다면옥, 유리구슬, 화살촉, 손칼 등이 소량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지만, 드물게 5호 독에서는 쇠칼이 출토되었고, 18호 독에서는 왜계(倭係)의 청동거울이 출토되어 상대적으로 신분이 높은 이들도 독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덧널무덤은 대형의 무덤은 확인되지 않고 유물도 빈약하다. 돌덧널무덤도 광구소호(廣口小壺)와 같은 소형 토기가 주로 부장되며, 특이하게 2호 돌덧널무덤에서 왜계의 청동화살촉이 출토된 바 있다. 왜계 유물이 출토된 18호 독무덤과 2호 돌덧널무덤 역시 부장품이나 무덤의 크기에서 차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무덤군에서 계층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성인을 독에 묻거나, 독무덤이 중심인 무덤군은 창원삼동동유적을 제외하면 가야나 신라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돌덧널무덤도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있어 지역적인 특징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8호 독무덤 출토의 왜계 청동거울은 가장 유사한 것이 일본 오사카츠보이오타비야마〔大阪壺井御旅山〕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며, 2호 돌덧널무덤 출토 청동화살촉 역시 일본 고분시대 전기에서 자주 확인되는 것으로 4세기 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창원삼동동유적은 금관가야의 김해 대성동 고분군, 김해 양동리 고분군과 같은 중심 고분군과 달리 지역 내 독자적인 문화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