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형동기는 왜(倭)와 가야가 공유하는 청동기로, 이전에는 왜에서 제작되어 전해진 것으로 이야기되었지만, 최근에는 가야에서 더 많은 숫자가 출토되면서 이곳에서 만들어져 왜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26점, 김해 양동리 고분군에서 16점,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12점, 김해 망덕리 고분군에서 3점, 창원 석동 유적에서 1점이 발견되어 갸야 중에서도 중심 고분군에서 많이 확인되었다.
최근에는 신라의 영역인 포항 남성리 유적에서도 가야 계통의 판갑옷과 함께 2점이 발견되어 주목받고 있다. 이 외에 함안 사도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것은 청동이 아닌 흙으로 빚어서 만든 모방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형동기는 4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일본 기나이[畿內]를 중심으로 확인되는데, 하지하카[著墓] 고분과 같은 초기의 고분이 모여 있던 나라[奈良] 분지에서 오사카[大阪]의 가와치[河內]의 대형 고분으로 옮겨간 시점의 유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일본 내에서 중심 세력이 가와치의 새로운 신진 세력으로 바뀌면서 이들의 상징물로 통형동기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는 원통형으로 위쪽에는 손잡이에 끼워넣는 구멍이 있고, 아래쪽이 위쪽보다 더 넓은 형태이다. 몸통은 4개의 긴 투창을 2단 혹은 3단으로 만들었다. 투창 사이의 단에는 돌대를 장식하기도 하였다. 안에는 구슬이나 봉이 들어 있어 원래의 기능은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것과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용도는 창의 자루끝을 장식하는 물미라는 의견, 의식용 지팡이의 끝에 장식하거나 칼 손잡이라는 의견 등이 있다. 크기는 대체로 길이 1020㎝, 지름 2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