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건(士建), 호는 잠와(潛窩).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 최득정(崔得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순릉참봉 최삼빙(崔三聘)이고, 아버지는 최신보(崔臣輔)이며, 어머니는 평해황씨(平海黃氏)로 안릉참봉 황임종(黃林鍾)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생 최계종(崔繼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4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부장을 제수받았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결사대 수백명을 인솔하고 서생포(西生浦)의 적을 격멸한 데 이어 양호(楊鎬)·권율(權慄)과 함께 도산(島山)에서 대승하였다.
1600년 여도만호 겸 선전관(呂島萬戶兼宣傳官)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1607년 도총도사에 제수되자 비로소 관직에 나갔다. 1615년(광해 7) 부사(府使) 때 능창군(綾昌君) 전(佺)의 추대사건에 연루되어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후 사면되어 가덕첨사(加德僉使)를 제수받았다.
경흥부사·공조참판을 거쳐 1630년(인조 8) 경기수사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겸하였다. 1634년 전라수사를 거쳐서 1636년 공주영장으로 병자호란을 맞자 감사 정세규(鄭世䂓)를 따라 참전하여 용인 험천(險川)에 이르러 청군을 만나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저서로는 『정무공기실(貞武公紀實)』 2권이 있다. 1637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1647년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경주의 숭렬사(崇烈祠), 경원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정무(貞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