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달(申致達)과 김만보(金萬寶)가 편집해 두었던 것을 신치달의 아들 신대중(申大重)이 김성련(金聖鍊)과 함께 간행하였다. 권두에 1820년(순조 20) 김시찬(金是瓚)이 쓴 서문, 권말에 1823년 신창조(申昌朝)가 쓴 발문이 있다.
6권 4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3에 시 490여수, 권4에 소(疏) 2편, 서(書) 32편, 잡저 11편, 권5에 서(序) 9편, 기(記) 6편, 발(跋) 12편, 설(說) 3편, 명(銘) 2편, 상량문 1편, 권6에 제문 11편, 애사 1편, 행장 3편, 묘갈명 6편, 부록에 행장·묘갈명·만사·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고, 뒤에 김정구(金鼎九)의 『정자공유고(正字公遺稿)』가 합편되어 있다.
시는 대부분 귀양에서 풀려나 한가롭게 지내며 만년의 심회를 읊은 것들이다. 「산촌잡영(山村雜詠)」 4수는 산촌의 유한한 풍경을 읊은 시다. 작자는 죽으나 사나 이 산을 나서지 않을 것이니 현으로 나가는 길을 알아서 무엇하겠느냐며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단호히 보여 주었다.
「서회(書懷)」는 작자가 산중 생활에 적응해 가며 세상을 잊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의 모습은 백구와 같이 희고 시를 짓는 마음은 물처럼 맑다.(道貌鷗同白 詩腸水如淸)”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자연과 합치된 물아일체의 경지에까지 몰입했음을 알 수 있다. 「산중잡흥(山中雜興)」·「산거잡흥(山居雜興)」·「산보(散步)」·「효급(曉汲)」 등도 속세를 등지고 곡식을 가꾸며 계절에 따라 그 기쁨을 읊은 시다.
소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질(陞秩)이 되자 이에 감사하는 뜻을 임금에게 올린 글이다. 서(書)는 대부분 유경시(柳敬時)·권상일(權相一) 등의 벗과 족숙 김성겸(金性兼) 등의 친지에게 안부와 근황을 묻는 내용이다. 잡저의 「상변(相辨)」은 관상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일과 관련지어 논한 것이다. 이 밖에 자손과 노비에게 경계삼아 지어 준 글, 독서 후의 생각을 간략히 기록한 글들이 있다.
묘지명 가운데 「격암남공묘갈명(格菴南公墓碣銘)」은 방술가로서 일화와 전설로만 알려진 남사고(南師古)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알려 주는 자료다. 「신의장사적(申義將事蹟)」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신규년(申虯年)의 사적비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