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년시(式年試) 외에 비정규적으로 설행(設行)된 문·무과의 하나이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된 경과(慶科)의 하나로서, 과거시험을 국왕이 창경궁 내 춘당대에 친림하여 보였기 때문에 춘당대시라 일컬었다. 춘당대 문·무과가 처음으로 설행된 것은 1460년(세조 6)이며, 이 시험에서 문과 4인, 무과 51인을 뽑았다.
춘당대시는 알성시(謁聖試)와 마찬가지로 초시·복시·전시의 단계가 없이 단 한번의 시험에 의하여 급락을 결정하고 합격자도 시험당일에 발표하였다. 선발인원은 그때마다 품정하였는데 대체로 5인 내외였으며 3인을 뽑은 경우도 있었다.
1572년(선조 5)의 시험에서 15인을 뽑은 것은 춘당대문과로서는 예외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같은 춘당대시라도 무과에서는 식년무과보다 훨씬 많은 수를 뽑은 예가 적지 않았다.
춘당대무과는 관무재라고 하여 각 군문(軍門)의 무사들을 대상으로 국왕이 춘당대에 친림하여 실시하였다. 초시와 복시 두 차례의 시험이 있었으며, 초시는 두 곳에서 나누어 실시하였고, 복시는 춘당대에서 거행하였다.
조선시대 전기간에 설행된 춘당대시의 횟수에 관하여는 『국조문과방목』·『국조방목』·『등과록』 등 각 자료에 따라서 같은 시험인데도 ‘춘당대시’라 하고 혹은 ‘정시’라 하여 정확한 것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모두 20회 정도로 생각된다.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