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릉과 강릉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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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서울 조선 문정왕후 태릉 전경
서울 조선 문정왕후 태릉 전경
조선시대사
유적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시대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과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인 강릉을 통칭한 능호를 지칭하는 용어.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서울 태릉과 강릉(서울 泰陵과 康陵)
분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조선시대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소재지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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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시대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과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인 강릉을 통칭한 능호를 지칭하는 용어.
개설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조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尹氏)의 무덤인 태릉(泰陵)과 조선 명종과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沈氏)의 무덤인 강릉(康陵)의 통칭으로, 두 왕릉 각각 502평과 765평 일대가 1970년 5월 26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내용

태릉은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 제2의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다. 문정왕후는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윤지임(尹之任)의 딸로 1501년(연산군 7)에 태어났다. 1517년(중종 12) 왕비로 책봉되었고, 1565년(명종 20) 창덕궁에서 65세의 나이로 죽었다.

생전에 문정왕후는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尹氏)와 같이 있는 중종의 정릉(靖陵)을 봉은사(奉恩寺) 곁에 천봉하고 그곳에 묻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지대가 낮아 장마철에 물이 괴자, 지대를 높이는 데 큰 비용만 들이고 결국 태릉에 묻혔다.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자리 잡은 태릉의 석물 제도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따르고 있다. 능은 운채(雲彩)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새겨진 병풍석을 둘렀고, 그 위의 만석(滿石)을 연결한 곳의 중간 인석(引石)에 간지(干支)를 문자로 새겨 방위를 이중으로 표현하였다.

태릉의 상설(象設) 규모는 곡장(曲墻) 3면에 병풍석 12면, 난간석 12칸, 혼유석(魂遊石) 1, 명등석(明燈石) 1, 망주석 1, 표석(表石) 1,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 마석(馬石) 2쌍, 양석(羊石) 2쌍, 호석(虎石) 2쌍이며, 정자각(丁字閣)·수라청(水刺廳)·망료위(望燎位)·홍살문·재실(齋室) 등이다. 그러나 이후 정자각은 소실되고 석축과 초석만이 남아 있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왕인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해좌사향(亥坐巳向)의 동원쌍봉(同原雙封)이며, 태릉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명종은 1534년(중종 29)에 태어나 1545년(인종 1) 왕위에 올랐으며, 1567년(명종 22) 6월, 경복궁 양심당(養心堂)에서 34세로 죽어 그 해 9월, 이곳에 묻혔다.

인순왕후 심씨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딸로, 1545년 명종 즉위와 함께 왕비에 진봉되었다. 1575년(선조 8) 정월에 창경궁 통명전(通明殿)에서 44세로 죽어 그 해 4월 이곳에 묻혔다.

능의 제반 제도는 『국조오례의』를 따랐으며, 태릉과 마찬가지로 만석 중간에 문자로 십이지를 새겨 넣었다. 쌍분 앞에 각각 혼유석이 놓여 있으며, 명등석은 화대(火袋)가 하대석(下臺石)보다 좁아지고 대석 허리가 길어진 양식으로, 선릉(宣陵)의 양식을 본뜬 16세기 복고풍의 특색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능의 상설 규모는 곡장 3면이 쌍분을 둘러싸고 있으며, 병풍석 12면, 난간석 20칸이 각각 설치되어 있고, 혼유석 2, 명등석 1, 표석 1,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 마석 2쌍, 양석 2쌍, 호석 2쌍이 있으며, 정자각·수라청·망료위·홍살문 등이 있다. 석물들은 문·무인석이 태릉과 매우 흡사하며, 난간석을 터서 쌍분 능침으로 한 것이 다르다.

참고문헌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서울문화재대관』(서울특별시, 1987)
『조선왕릉석물지』(은광준, 1985)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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