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창업군주가 상왕(上王)으로 물러날 때 창업의 공덕을 존숭하기 위해 태상왕이라 하거나 상왕을 높여서 태상왕이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태상왕으로는 태조 이성계가 정종 때 상왕으로 물러나 있었던 경우와 세종 때 정종과 태종이 각각 태상왕과 상왕으로 있었던 경우뿐이다.
태상왕은 왕위의 왕인 상왕보다 더 위의 왕이라는 의미이다. 태상왕이 존재한다는 것은 세 명의 왕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왕조체제에서는 비상상태라고 할 수 있다. 왕조의 왕은 즉위한 이후 사망할 때까지 군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또한 절대권력자인 왕은 1명만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같은 시대에 상왕이 존재하여 두 명의 왕이 존재해도 권력과 국론이 양분되어 왕조가 위기에 빠지기 쉬웠다. 여기에 한 명의 왕이 더 존재하면 이는 그야말로 왕조의 비상시국을 의미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후계자 결정과정에서 아들 태종에게 왕위를 빼앗기다시피 하고 물러나야 했다. 1차 왕자의 난을 거쳐 실권을 장악한 이방원은 자신의 형을 왕으로 추대하고 태조를 태상왕으로 삼았다. 이 때의 태상왕은 창업군주로서의 이성계를 존숭해 부른 칭호였다. 태상왕으로 물러난 태조는 이후 10년을 더 생존하였다.
태종은 자신의 후계자 세종의 정치경험을 높여주기 위해 생전에 왕위를 선위하였다. 태종이 선위할 당시 상왕인 정종이 생존해 있었다. 이에 따라 세종에 앞서 왕을 역임하였던 정종과 태종을 예우해야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해결방안으로 태종을 상왕이라 하고 정종을 태상왕이라 하였다.
태종은 상왕으로 있은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정종은 태상왕으로 있은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오직 한 명의 왕만이 존재해야 할 왕조시대에 태상왕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왕조의 위기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개국 직후의 혼란상황에서 이런 일이 야기된 것이다.
그러나 태종과 세종의 정치력으로 이런 위기상황이 극복되고 조선왕조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태상왕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