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위영 ()

목차
근대사
제도
1888년(고종 25) 4월에 설치된 삼영(三營).
목차
정의
1888년(고종 25) 4월에 설치된 삼영(三營).
내용

종래의 군제가 각 영에 분산되어 있어 경비부담이 많고 편제에도 모순이 많아 개편되었는데, 3영 가운데 중영(中營)으로서 친군오영(親軍五營)의 우영(右營)·후영(後營)·해방영(海防營)을 통합, 계승한 것이다. 부대표시는 황색으로 하였으며, 최고위직인 통위사(統衛使)는 민영익(閔泳翊)이었다.

도제조(都提調) 1인, 영사(營使) 1인, 병방(兵房) 7인, 군사마(軍司馬) 2인, 문안(文案) 4인, 정령관(正領官) 1인, 부령관(副領官) 3인, 참령관(參領官) 6인, 초관(哨官)16인, 참군(參軍) 2인, 군의(軍醫) 4인, 집사(執事) 49인, 초장(哨長) 30인, 별무사(別武士) 38인, 서리(書吏) 13인, 서기 34인, 대령서리(待令書吏) 3인, 고직(庫直) 8인, 대청직(大廳直) 10인, 금송서원(禁松書員) 1인, 순령수(巡令手) 78인, 등롱군(燈籠軍) 38인, 병정 2,250인, 작대병(作隊兵) 1,960인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891년 2월에 새로운 군영인 경리청(經理廳)이 생기면서 통위영에 속하였던 전 총융청군(摠戎廳軍)이 분리되었고, 1894년에 부임한 일본공사 이노우에(井上馨)의 “각장(各將)에게 분산된 군대의 명령권을 통합하라.”는 건의에 의하여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한국군제사-근세조선후기편-』(육군본부, 1977)
집필자
김원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