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오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파오치는 주로 공민왕, 우왕 대에 근시 조직으로 활동하던 것으로 보인다. 1358년(공민왕 7)에 왜구가 교동(喬桐)에 침입하자 파오치 3개 번(番)에서 각각 10인을 징발하여 내보냈고, 1375년(우왕 1)에는 파오치 등이 내용(內用)을 빙자하여 주현(州縣)에 세금 등을 마구 거두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고려 후기에 몽골 관계가 진전되면서 황제의 숙위 조직인 겁설(怯薛)을 모방한 국왕 측근 조직이 새롭게 등장하였는데, 파오치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이다.
파오치라는 명칭은 몽골어에서 유래한 관직으로 보이는데, 그 뜻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우선 하나는 '투숙하다'는 의미의 ‘바고〔baghu〕’나 숙박지를 뜻하는 ‘바고달〔baghudal〕’ 그리고 여객을 맡은 사람을 뜻하는 ‘바고르치 baghurci〕’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사(元史)』에 요리사로 등장하는 ‘박이적(博爾赤)’ 등의 사례가 ‘보르치〔borci〕’, ‘바우르치〔bawurci / ba’urci〕’ 등으로 음가를 복원할 수 있는데, 파오치 또한 여기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그 동안 주로 여객(旅客) 또는 여객에 관계되는 일을 맡았던 군인으로 파악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세종실록』 19년 9월 병신일에 “국속에 고기 자르는 사람을 파오치라고 부른다”라는 기사에 주목하여 파오치가 요리와 관계된 일을 담당하였다고 이해하고 있다. 어원이 어느 것이든 간에 군주의 일상생활을 시봉하는 근시 역할이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파오치는 주로 공민왕 대와 우왕 대에 근시 조직으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1358년(공민왕 7)에 왜구가 교동(喬桐)에 침입하자 파오치 3개 번(番)에서 각각 10인, 충용위(忠勇衛) 3개 번에서 각 30인, 아가치〔阿加赤〕 3개 번에서 각 10인씩을 징발하여 보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어 국왕을 숙위하는 군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1375년(우왕 1)에는 파오치 등이 내용(內用)을 빙자하여 주현(州縣)에 세금 등을 마구 거두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는데, 이 역시 파오치가 궁중에서 활동하는 근시 조직임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