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동란중 수복된 평양에서 발간된 것으로, 1950년 9월 20일 평양에 입성한 유엔군 산하의 한국군 제1사단은 잔류시민들의 생활이 안정되도록 도와주는 한편, 정훈부로 하여금 신문발간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어 입성한 국방부 정훈국 평양분실 실장 신명구(申明九) 소령은 종군작가 최태응(崔泰應)에게 민본리(民本里)에 있는 공산당기관지 『노동신문』 자리에서 신문을 발간하도록 하였다.
그뒤 편제가 바뀌어 평양지구의 정훈사무를 정훈 제2대대가 맡게 되어서 신문제작도 정훈 제2대대 감독 아래에 들어갔으나 문제안(文濟安) 등 실무진은 그대로여서 신문제작은 12월 3일자까지 계속되었다.
12월 4일자 신문은 제작 도중에 후퇴하게 되어 제판(製版)하던 것을 그대로 트럭에 싣고 남하하면서 여러 번 인쇄를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울까지 돌아와 해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신문은 평양시민이 생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였고, 많은 문화인들이 남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비록 작은 B4판이었으나 공산주의사회가 아닌 민주주의사회의 실태와 이념을 틈틈이 알려서 사상계몽에도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