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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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이 『평화일보』를 개제하여 1949년에 창간한 신문. 일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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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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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홍찬이 『평화일보』를 개제하여 1949년에 창간한 신문. 일간신문.
내용

1949년 10월 18일 홍찬(洪燦)이 『평화일보(平和日報)』의 판권을 양우정(梁又正)으로부터 물려받아 제호를 바꾸어 창간하였다.

『평화일보』의 지령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며 사옥은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에 있었다. 초창기에는 블랭킷판 양면 조간으로 발행하였다.

6·25동란 동안 대구로 피난을 하였던 이 신문은 1950년 7월 3일부터 최상덕(崔象德) 등이 전단형(傳單型)의 호외를 제작, 간단한 보도를 하였고 공산치하의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비행기를 이용하여 공중살포를 하기도 하였다.

1955년 10월 21일 「출판물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자 이를 반대하였고, 1957년 11월 선거법개정안에 언론조항이 삽입되자 이 법도 반대하였으나, 그 기본적인 입장은 이승만(李承晩)·이기붕(李起鵬)을 지지하는 적극적인 여당지의 성격을 띠었다.

1960년 11월 1일을 기하여 조·석간제를 채택하고 매일 8면을 발행하여 신문의 쇄신을 기하려 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61년 2월 1일김연준(金連俊)에게 판권이 넘어가 『대한일보(大韓日報)』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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