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7월용성구역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장촌마을 주택건설공사장에서 파괴된 주거지가 노출됨에 따라 북한의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2기(基)의 주거지를 확인하였다.
주거지는 모두 30∼40m 높이의 구릉상에 17m의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다. 위쪽에 있는 제1호 주거지는 장축이 7m인 타원형을 띠고 있으나 서쪽의 절반은 파괴되었다. 지면에서 약 60㎝ 정도 파 내려간 이 주거지에는 특별한 시설은 없고 단지 중앙을 조금 파내고 만든 화덕자리만 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갈돌[碾石]·돌도끼·자귀 등의 석기류와 상당량의 토기조각이 출토되었는데, 토기는 모두 둥근 바닥을 가진 빗살무늬토기로써 무늬가 다양하다. 높이 30㎝가 넘는 비교적 큰 토기에는 전형적인 빗살무늬가 새겨져 있고, 보다 작은 토기에는 점선무늬·사선무늬·평행선무늬가 1∼3가지씩 새겨져 있다.
이 유적에서 주목되는 점은 문양이 없는 토기조각이 단 한점도 출토되지 않았다는 것으로서, 인근 남경유적이나 금탄리유적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종래까지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유적들이 주로 강변이나 해변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왔는데, 이 유적은 비교적 내륙쪽의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어서 신석기시대의 농경이 청동기시대와 큰 차이 없이 발전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암시하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