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 김덕보(金德譜)가 두 형을 기리며 지은 정자이다. 그는 큰형인 김덕홍(金德弘)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서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금산전(錦山戰)에서 전사하고, 작은 형인 김덕령(金德齡)도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큰 공을 세웠으나 모함을 받아 옥사하자 세상을 등지고 향리에 가까운 원효계곡에 정자를 짓고 은둔하였다 한다.
정내에는 고경명 · 임억령(林億齡) · 안방준(安邦俊) 등의 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자는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져 있었고 이 곳에서의 칩거는 난 후인 것으로 보인다. 골기와 팔작지붕건물로 재실이 한 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