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사공 수(司空檖)가 지은 영사가사(詠史歌辭). 1책. 활자본. 원래는 작자·연대 미상의 <한양가>이었다. 그런데, 이를 최강현(崔康賢)이 고증하여 작자·연대를 밝히고,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을 노래한 ‘향토한양가’와 구별하여 이 작품은 ‘왕조한양가(王朝漢陽歌)’라고 하였다. 내용은 한양에 도읍을 정한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를 노래한 조선왕조의 역사가이다.
이본에는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필사본, 김종길(金宗吉) 소장 필사 지례본(知禮本), 지은이의 손자인 훈(塤)이 소장하고 있는 필사 수정증보본 등 매우 많다. 인쇄본으로는 1935년 신태삼(申泰三)이 활판으로 발행한 세창서관본(世昌書舘本), 1957년 권우상(權佑相)이 편집, 간행한 <한양오백년가>가 있다. 이들은 모두 표지 서명은 ‘한양오백년가’로 되어 있지만, 본문 앞의 제목은 ‘한양가’로 되어 있다. 사공 수가 지은 <한양가>와 모두 동일한 내용이다. 수정본에 비하여 끝부분의 지은이 개인에 관계되는 사설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이밖에도 지은이가 전혀 다른 김호직(金浩直)의 회장체(回章體)로 된 필사원본 <한양가>와 이를 밑본으로 하여 그의 아들 기수(基秀)가 1955년에 국한문혼용 원문을 국한문 병렬로 석판 인간하면서 ‘이조오백년사화(李朝五百年史話)’라고 개제(改題)한 것이 있다. 김호직의 <한양가>는 지은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공 수의 <한양가>를 보고 그것을 수정·변개하여 분량을 조금 줄인 듯하며, 거의 이본이 없다. 사공 수의 <한양가>는 이본이 대단히 많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는 금서(禁書)로 규제하였으나, 몰래 더 많이 읽었다.
“슬프다 친구님네/이 가사 들어보소/어느 가사 지었는고/한양가를 지었어라.”로 시작하여 “가련하고 가련하다/한양가를 짓고 보니/슬픈 심회 나는 것이/측량치 못할로다.”로 끝맺는 사공 수의 세창서관본 <한양가>는 2율각 1구로 헤아려 5,688구이다. 조선건국에서부터 역대 제왕별로 그 치적과 일대기를 중심으로 마지막 황제 순종의 퇴위, 곧 망국까지의 조선왕조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 사공 수의 수정본은 2율각 1구로 8, 535구나 되는데, 아직 학계에 그 전문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