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판. 134면. 1949년 청만사(靑巒舍)에서 발행되었다. 수록작품은 모두 31편으로 ‘해’에는 <해>·<묘지송 墓地頌> 등 5편, ‘청산도(靑山道)’에는 <낙엽송>·<향현 香峴>·<도봉 道峰> 등 12편, ‘장미의 노래’에는 <비둘기>·<하늘>·<오월에> 등 10편, ‘바다’에는 <바다 1>·<해수 海愁> 등 4편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 이어 김동리(金東里)의 발문(跋文)이 있다. 이 시집은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薰)과 함께 간행한 3인시집 ≪청록집≫ 이후 안정된 박두진의 시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는 특히 ‘해’와 ‘산’, ‘하늘’과 ‘바다’ 등의 자연이 매우 중요한 소재이자 배경으로 나타나며, 이들은 상징적 의미까지도 지니고 있다.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觸髏)가 빛나리”(‘묘지송’에서)와 “산 넘어서 밤 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띈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해’에서)라는 시행의 시간 배경은 ‘밤’이다.
일제하의 당대를 ‘어둠’ 혹은 ‘밤’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밤이 가면 아침이 오리라는 자연의 법칙을 믿고 있다. 따라서, ‘해’가 상징하는 것은 역사의 아침에 대한 희망찬 기다림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시 <청산도>에서도 시간 배경은 ‘밤/어둠’이며, 당대 현실은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버레 같은 세상에도”와 같이 부정적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라는 시구처럼 산을 중심으로 한 자연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생명력의 표상으로서 제시된다.
‘산’은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신앙적 믿음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고통스러운 것으로서의 지상의 삶에 대한 비관적 인식은 천상의 삶, 또는 ‘자유로운 정신’에 대한 갈망과 지향으로도 분출된다.
“따거운 볕/초가을 햇볕으로/목을 씻고/나는 하늘을 마신다/자꼬 목말러 마신다”(하늘)처럼 저자는 지상의 척도와 천상의 척도를 함께 제시하면서, 천상의 척도를 향한 정신적 지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지상의 삶에 대한 비관적 인식은 ‘바다’가 표상하는 열린 세계에 대한 지향과 동경으로도 나타난다. “휘휘휘 불어오는 푸른 산바람, 귓가를 불어가는 푸른 산바람. 바다로 불어가나? 바다가 그리워라.”라는 시 <해수 海愁>의 일부분이 이 점을 입증하여준다.
이처럼 시집 ≪해≫에는 부정적·비관적인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산’·‘해’·‘하늘’ 그리고 ‘바다’가 표상하는 미래지향적인 낙원회복의 꿈과 기다림을 간직하고 있는 시편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