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연 4행의 자유시로, 1939년 6월 『문장(文章)』 제5호에 발표되었다. 이 시는 「향현(香峴)」(1939년 6월) · 「낙엽송(落葉頌)」(1939년 9월) · 「의(蟻)」(1940년 1월) · 「들국화」(1940년 1월) 등과 함께 『문장』지를 통하여 정지용(鄭芝溶)의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하게 된 작품의 하나이다.
“시단(詩壇)에 하나 신자연(新自然)을 소개(紹介)하여 선자(選者)는 만열(滿悅) 이상(以上)이외다.”라는 선자(選者)의 추천사(문장 1940년 1월호)에서 볼 수 있듯이, 박두진은 신선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자연의 호흡과 체취를 단호한 어조와 전통적인 가락으로 표현함으로써 주목을 받으며 등단하게 된 것이다. 「묘지송」은 박두진의 시적 출발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어 주목을 끈다.
「묘지송」에는 당대 현실이 ‘무덤’ · ‘주검’ 등으로 비유되어 있다. 김동환(金東煥)과 심훈(沈熏) 등의 시에서 그러하였듯이 ‘무덤’이란 일제강점기 하에서 현실을 어둡게 은유하는 표상이며, ‘주검’이란 그러한 무덤 속과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비참한 모습에 해당된다. 이는 시 「푸른 하늘 아래」에서 현실이 ‘처참한 밤’이나 ‘황폐한 땅’과 같이 부정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묘사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묘지송」에서는 비관적인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변모시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오히려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太陽)만이 그리우리.”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비관적 · 부정적인 것을 미래지향적인 것으로써 이겨내려는 능동적인 의지와 낙원 회복의 꿈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 사고의 원동력은, “가장 큰 힘의 배경과 근원이 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나는 종교신앙의 길을 택하기에 이르렀고 비 내리는 어느 주일(主日)에 스스로 찾아가 기독교회의 문을 두드렸다.”라는 시인 자신의 글(나의 추천시대)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독교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박두진의 시 「묘지송」은 비관적인 현실 인식이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강력한 믿음의 세계가 작용하고 있는 작자의 대표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