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해남에서 완도로 가는 길목의 해안 쪽으로 상당히 넓은 들이 있고 그에 인접하여 마을이 있다. 잘 생긴 정자나무가 있는 어귀를 지나면 기와집 몇 채가 있는데, 그 중앙에 이 집이 있다.
안채 상량문에 ‘광무10년병오 11월27일 경신수주 동12월초3일을축신사시 상량축좌(光武十年丙午 十一月二十七日 庚申竪柱 同十二月初三日乙丑辛巳時 上樑丑坐)’라 되어 있다. 광무 10년은 1906년이다. 이때 안채와 함께 사랑채 · 별당채도 다 준성되었다고 한다.
중문간채는 그보다 뒤에, 다른 부속건물들은 얼마 전에 완성되었다. 솟을대문이 서 있는 문간채는 모두 9칸이고 마당이 넓다. 사랑채까지는 한참인데, 뒷산자락이 흘러들어와 있어서 경사가 심하다.
축대를 화계 쌓듯이 쌓고 잘 생긴 나무들을 심었다. 사랑채는 一자형의 7칸 전후퇴집이다. 서쪽의 첫째 칸은 앞뒤 툇간을 포함한 방인데, 가운데를 막아 앞쪽은 약방으로, 뒤쪽은 골방으로 하였다. 약방 앞쪽에는 쪽마루가 있다. 다음은 2칸의 사랑방인데 윗방과 아랫방이 샛장지 없이 트여 있다.
다음은 2칸의 대청, 그 다음은 다시 방 2칸이다. 이들의 앞쪽에는 반 칸의 퇴가 있고 뒤쪽 퇴는 각 칸을 막아 다락(골방)을 만들었다. 5량의 가구이다. 안채는 ㄱ자형이다. 칸반통이었으나, 일부는 후대에 덧붙이거나 하여서 변형이 되었다.
ㄱ자로 꺾인 평면 중 남쪽의 끝칸과 다음 칸이 부엌이다. 그 북쪽의 2칸이 안방이고, 그 북쪽이 마루방이다. 여기에서 꺾이면서 서쪽으로 3칸의 대청이 계속되고 이어 방 1칸인데 ‘못방’이라 부른다.
그 다음에 반 칸 퇴가 있다. 이들 앞쪽으로는 앞퇴가 있어 안방에까지 계속된다. 5량으로 가구하였다. 별당채도 □자형의 평면이다. 역시 칸반통인데, 좌우로도 반 칸의 퇴가 있다. 중앙의 2칸이 대청이다. 대청 북쪽에 방 1칸이 있다. 북쪽으로 반칸퇴가 있다. 대청의 남쪽은 방이다.
이 방에 이어 서쪽으로 방 1칸이 더 있다. □자형으로 꺾인 부분이 된다. 이들 방의 남쪽으로 반칸퇴가 있다. 남쪽퇴에서 북쪽퇴에 이르기까지 앞퇴가 계속되었다. 뒷산이 좋고 집 주변에도 좋은 나무들이 있어서 풍치가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