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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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시조작가 김수장이 시조 883수를 모아 작가별로 분류하여 편찬한 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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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시조작가 김수장이 시조 883수를 모아 작가별로 분류하여 편찬한 가집.
내용

≪청구영언≫·≪가곡원류≫와 더불어 3대시조집으로 일컬어진다. 이본으로 박씨본(朴氏本)·일석본(一石本)·주씨본(周氏本)·U.C본(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y에 소장됨.) 등 4종이 있다.

이 중 일석본은 표지에 ‘해동풍아(海東風雅)’라 하고 본문의 서두에는 ‘해동가요’라 하였다. 주씨본은 주시경(周時經)이 교열·교정한 것으로 최남선(崔南善)이 소장하여 육당본(六堂本)이라 일컫기도 한다. 일석본과 주씨본은 6·25 때 소실되었다. 일석본의 전사본(轉寫本)으로 조윤제(趙潤濟)와 이재수(李在秀)의 두 전사완본(傳寫完本)이 있다. 정병욱(鄭炳昱), 김근수(金根洙)가 각각 무명씨를 전사한 것이 전한다.

박씨본에 의하면, ≪해동가요≫는 1754년(영조 30)에 편찬자가 가집 편찬을 거의 완료하고 자신의 서문을 썼고, 그 다음해 장복소(張福紹)와 자신의 발문을 첨가하여 편찬을 완결하였다. 이 초찬본을 을해본(乙亥本)이라 하나 전하지 않는다(박씨본은 이것의 전사본으로 추정됨.). 이 본을 수정, 보완하여 1763년에 제2차본이라 할 개찬본을 내었으니 이를 계미본(癸未本)이라고 한다(일석본은 이것의 전사본으로 추정됨.).

편자는 계미본을 완성한 이후에도 수정과 보완을 계속하여 1767년 시조 <봉하친경친잠 奉賀親耕親蠶> 2수를 지어 본편에 보충하고, ‘각조체격(各條體格)’과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명단을 작성하여 책 끝에 붙이고, ‘청구가요(靑邱歌謠)’라는 부편(附篇)을 엮어 권말에 수록했다. 이것이 제3차본이라 할 정해본(丁亥本)이다(주씨본과 U.C.본은 이것의 전사본으로 추정됨.). 이러한 수정과 보완의 노력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음이 1769년에 김중열(金重說)과 박문욱(朴文郁)이 쓴 ≪청구가요≫ 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재는 작자 위주로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누어 작품을 싣되, ≪청구영언≫처럼 악곡도 함께 고려하였다. 여러 이본 중에서 주씨본의 체재를 보면, 권두에 김수장 자신이 쓴 <해동가요서>에 이어 <각조체격>·<가지풍도형용14조목 歌之風度形容十四條目>·<각가체용이별부동지격 各歌體容異別不同之格>·<작가제씨 作歌諸氏> 등을 밝히고 그 다음에 작품을 곡목과 관련하여 수록하였다. 권말에는 장복소의 발문에 이어서 고금창가제씨의 명단 56인을 나이 순으로 기록하였다.

작품의 배열을 보면 작가와 곡목을 아울러 고려했으며, 주씨본과 U.C.본은 대체로 일치한다. 유명씨를 보면, 박씨본은 악곡에 따라 초중대엽(初中大葉)·이중대엽(二中大葉)·삼중대엽(三中大葉)·북전(北殿)·이북전(二北殿)·초수대엽(初數大葉)’ 등 6개의 곡목을 제시하여 각 1수씩의 작품을 들고, 이어서 이수대엽이 와야 할 자리에는 진본(珍本) ≪청구영언≫처럼 곡목을 밝히지 않았지만 열성어제(列聖御製)·여말(麗末)·본조(本朝)의 세 부문으로 나누어 작가별로 작품을 배열하였다.

일석본과 주씨본은 본문 앞머리에 6개의 곡목을 제시한 것과 초수대엽까지는 박씨본과 같으나, 이수대엽을 명기한 것이 다르다. 주씨본에서는 박씨본과 같이 본문에 열성어제·여말·본조라는 표시가 있는데, 일석본에서는 이러한 표시 없이 작품을 나열하였다. 작가 배열은 대체로 시대순으로 되어 있다.

무명씨부는 곡목별 배열을 했으나, 주씨본은 건(乾)편만 전하고 곤(坤)편이 전하지 않아 무명씨 작품은 1수도 없다. 즉, 박씨본은 접소용(接騷聳)·낙시조(樂時調)·만수(蔓數)의 3항목으로 배열되고, 일석본에서는 삼수대엽(三數大葉)·낙시조·편락시조(編樂時調)·소용(騷聳)·편소용(編騷聳)·만수대엽(蔓數大葉)의 6항목으로 늘어났다.

수록된 작품수는 유명씨의 경우 박씨본이 311수이고, 일석본은 321수(이재수본에 의함.), 주씨본은 568수이고, U.C.본은 475수이다. U.C.본 역시 무명씨 작품은 단 1수도 없다. 작가수는 박씨본이 93명이고, 일석본이 84명, 주씨본이 97명, U.C.본이 99명이다. 박씨본에 실려 있는 93명 가운데 주씨본에 빠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기에 이정보(李鼎輔)·조명리(趙明履) 등 후대인 약간명이 추가되고 수록 작품수는 대폭 늘어났다. 특히 김천택(金天澤)과 김수장의 작품이 대폭 증가되었다. 무명씨부의 작품수는 박씨본이 202수인데 비해 일석본은 315수로 대폭 증가되었다.

≪해동가요≫는 ≪청구영언≫·≪가곡원류≫와 더불어 시조가 수록된 3대가집(三大歌集)에 속한다. 풍부한 작품의 수록은 물론, ≪청구영언≫과 ≪가곡원류≫의 교량적 위치에서 후대 가집의 편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당시대까지 활동하던 가객의 명단을 작성한 것과 시조를 얹어 부르는 악곡의 풍격과 특징을 제시한 것은 시조 음악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다만 세 차례에 걸쳐 편찬된 ≪해동가요≫의 원전이 그대로 전하는 것은 없고 그 전사본만 남아 있는 실정이어서 원전 출현이 기대된다.

박씨본은 1979년규장문화사(奎章文化社)에서 영인되었고, 이재수의 전사본은 동광문화사(東光文化社)에서 ≪고전문학선≫에 수록하여 영인되었다. 주씨본은 1930년 경성대학에서 인쇄되었고, 이를 1974년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가 영인하기도 하였다. 교주본으로는 1950년에 김삼불(金三不)이 일석본의 유명씨부와 주씨본을 교합하여 정음사(正音社)에서 ≪해동가요≫로 출판한 것이 있다.

참고문헌

『교주본(校注本) 해동가요(海東歌謠)』(김삼불, 정음사, 1950)
『일석본(一石本) 해동가요(海東歌謠)』(이재수 편, 동광문화사, 1974)
『시조(時調)의 문헌적연구』(심재완, 세종문화사, 1972)
『고시조론(古時調論)』(최동원, 삼영사, 1980)
「해동가요(海東歌謠)의 편찬과정 소고」(정병욱, 『일석 이희승선생송수기념논총(一石 李熙昇先生頌壽紀念論叢)』, 일조각)
「해동가요(海東歌謠)의 형성과정」(강전섭, 『어문논지』 1,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회, 1972)
「박씨본(朴氏本) 해동가요고(海東歌謠考)」(최동원, 『문리대논문집』 18, 부산대학교, 1979)
「해동가요(海東歌謠)의 자료적 가치성」(박노춘, 『국회도서관보』137∼138, 국회도서관, 1979)
「U.C소장 해동가요고(海東歌謠考)」(정재호, 『고전문학연구』 3, 한국고전문학연구회, 1986)
「해동가요(海東歌謠) 해제」(황순구, 『시조자료총서』 2, 한국시조학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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