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찰 ()

목차
관련 정보
석화엄교분기원통초(권10) /  보현십원가
석화엄교분기원통초(권10) / 보현십원가
언어·문자
개념
삼국시대 우리말을 차자로 완전히 기록할 수 있었던 표기법.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우리말을 차자로 완전히 기록할 수 있었던 표기법.
내용

향찰이라는 용어는 『균여전(均如傳)』에 실린 최행귀(崔行歸)의 역시(譯詩) 서문에 나타난 것으로 향찰을 당문(唐文, 漢文)에 대립되는 뜻으로 사용하였는데, 향가(鄕歌)의 문장과 같은 우리말의 문장이라는 뜻으로 썼다.

현재 국어학에서 향찰이라는 말은 향가의 문장과 같이 우리말을 차자로 완벽하게 표기한 문장이나 그 표기체계(표기법)라는 뜻으로 쓴다.

향찰이라는 말은 문헌상으로는 『균여전』에 단 한번밖에 나타나지 않지만, 향가·향언(鄕言)·향명(鄕名)이라는 말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향(鄕)’이라는 글자로 자주 표현한 것을 보면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자주 쓰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초기학자들은 모든 차자표기를 이두(吏讀)라고 하여 ‘향찰’이라는 개념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는 신라시대의 차자표기법은 ‘향찰’, 고려시대 이후의 차자표기법은 ‘이두’라고 하여 구별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향찰과 이두는 용도·문체·표기법상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구별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이두는 고려시대에 와서 갑자기 향찰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향찰이 발달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향찰이 발달한 이후에도 공존하여 사용되었으므로, 이들을 시대의 차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비록 명칭의 발생연대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실재하였던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향찰의 기록으로서 현재 전하여 오는 것은 주로 향가이다. 『삼국유사』에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의 향가 14수, 『균여전』에 고려초의 향가 11수가 실려 전하고, 고려 예종의 「도이장가(悼二將歌)」 1수가 있어 모두 26수의 시가가 향찰로 기록되어 전한다.

이 밖에 13세기 중엽에 편찬, 간행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나타난 향약과 병에 대한 우리말(鄕名)의 표기도 향찰에 속한다. 『향약구급방』의 우리말은 단어의 표기가 주종을 이루지만 치초병(齒齼病)에 대한 “이가 솟고 시다(齒所叱史如.니솟ᄉᆡ다).”와 같은 설명은 순수한 국어문장을 향찰로 표기한 것이다.

향찰의 표기구조는 어절(語節)을 단위로 하여 ‘독자(讀字)+가자(假字)’의 구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즉, 개념을 나타내는 부분은 한자의 본뜻을 살려서 표기하고, 조사나 어미와 같이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부분과 단어의 어말음(語末音)의 부분은 한자의 뜻을 버리고 표음문자로 이용하여 표기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이두나 구결의 표기구조와 유형상 같다.

그러나 향찰은 완전한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하였고 가자의 부분인 토(吐)가 조사나 어미를 거의 완벽하게 표기하고 있다. 또 고유명사가 아니라도 ‘丘物叱丘物叱.구믌구믌’과 같이 ‘가자+가자’의 연결구조를 사용한 예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이두문은 한문의 어순과 국어의 어순이 섞이어 쓰이는 것이 주종을 이루지만, 향찰은 인용구나 특별한 표현적 효과를 위한 경우를 제하고는 한문의 어순은 쓰이지 않는다.

또, 이두문은 투식(套式)이 많고 한문식 표현에 의지하는 바가커서 조사나 어미가 소홀하게 표기되는 수가 많으나, 향찰은 조사나 어미의 표기가 정밀하여 자연스러운 국어문장을 표기하고 있다.

향찰은 차자표기법 가운데 가장 발달한 표기법이다. 관명과 같은 고유명사나 단편적인 단어의 표기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이두―구결―향찰의 순서로 발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유명사표기는 ‘가자+가자’의 표기구조가 특징적인데, 이는 한문과 국어식 문장에 구별 없이 쓰였다.

문장표기는 고구려에서 초기이두문인 변체한문이 발생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신라로 전하여졌다. 신라에서는 이 문체의 사용과 아울러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서와 같이 한자를 완전히 우리말의 어순으로 배열하여 표기하는 문체가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7세기경에 한문에 토를 다는 방법, 즉 구결이 발달하였고, 이 구결의 토와 우리말 어순의 이두문이 접합(接合)되어 향찰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향찰의 토를 표기하는 차자는 고유명사를 표기하던 가자가 많이 쓰였고 또 ‘가자+가자’의 연결구조를 보여주는 것도 일찍부터 고유명사표기의 특징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향찰은 고유명사·이두문·구결의 표기가 합류되어 발달한 것임을 말하여 준다.

향찰로 표기된 향가는 삼국시대에 지어진 것도 있으나 그 표기법인 향찰은 8세기경에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향가는 구전되다가 후대에 와서 기록될 수도 있어 현재까지 전하여오는 자료로 보면 향찰과 같이 발달된 차자표기법은 8세기 이후에야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자료로서 토가 나타난 것은 8세기 초이므로 이 시기에 와서 향찰의 발달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755년에 기록된 「신라화엄사경조성기(新羅華嚴寫經造成記)」는 완전한 국어의 어순과 아울러 토를 보여주고 그 밖에 향찰의 특성인 말음첨기법과 약체(略體)로 표기된 차자를 보여주고 있다.

이 조성기의 토의 표기는 국어문장에서 필요로 하는 조사나 어미를 정밀하게 표기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것이 곧 향찰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향찰에 매우 가까운 표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14수 가운데 5수는 8세기 중엽인 경덕왕 때 지어진 것이라 하였고, 특히 신충(信忠)의 「원가(怨歌)」는 효성왕 즉위초(736)에 지어서 잣나무[柏樹]에 붙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시기에 향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진성여왕 2년(888)에는 각간(角干) 위홍(魏弘)이 대구화상(大矩和尙)과 더불어 향가를 수집하여 『삼대목(三代目)』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균여(均如)의 향가가 신험(神驗)하여 널리 전파되었을 뿐더러 이따금 장벽(墻壁)에 쓰여 있기도 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9, 10세기에는 향찰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한문에 밀려 향찰의 사용이 차츰 위축되어갔을 것이나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一然)은 향찰 표기를 이해하고 향가를 실었을 것으로 믿어지고, 『향약구급방』의 우리말 표기에서도 향찰로 표기된 문장이 쓰인 것으로 보아 13세기까지는 존재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향찰의 발달과 보편화는 한문을 우리말로 새겨 읽는 석독구결(釋讀口訣)의 발달·보급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의 고려시대 석독구결은 한문을 우리말로 새겨 읽은 것으로, 그 원문을 토와 함께 토가 지시하는 대로 배열하면 바로 향찰과 같은 국어의 표기가 된다.

차자표기법은 한문을 어느 정도 익힌 다음에야 사용할 수 있는 것임을 미루어 볼 때 석독구결이 차자표기법의 배경이 된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향찰이 쇠퇴한 것도 이 석독구결의 쇠퇴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향찰로 표기된 자료들은 아직도 완전한 해독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삼국유사』의 향가를 중심으로 표기법상의 특징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개념부(槪念部)의 표기 : ㉮ 음독자(音讀字) 표기-太平, 善化公主, 薯童房, 四十八大願. ㉯ 훈독자(訓讀字) 표기-春/봄, 母牛/암쇼, 浮去隱/ᄠᅥ간, 憂音/시름, 岩乎·바회. ㉰ 가자(假字) 표기-毛冬/모ᄃᆞᆯ, 於冬是/어드리, 於內/어느, 達阿羅/ᄃᆞᆯ아라, 阿孩/아ᄒᆡ, 巴寶白乎隱/보보ᄉᆞᆲ온, 阿邪也/아야여.

② 토의 표기 : ㉮ 말음첨기(末音添記)―憂音/시름, 夜音/밤, 雲音/구룸, 道尸/길, 慕理尸/그릴, 心末/ᄆᆞᅀᆞᄆᆡ, 有叱/잇, 岩乎/바회, 折叱可/것거, 前乃/져나.

㉯ 조사(助詞)의 표기-㉠ 주격조사-雪是/눈이, 脚烏伊/가로리. ㉡ 속격조사-耆郎矣皃史/耆郎ᄋᆡ 즈시, 蓬次叱巷中/다봊ㅅ굴헝ᄒᆡ. ㉢ 대격조사-房乙/방ᄋᆞᆯ, 吾肸/나ᄅᆞᆯ, 花肸/고ᄌᆞᆯ.

㉣ 처격조사-巷中/굴헝ᄒᆡ, 邊希/ᄀᆞᆺᄒᆡ, 此矣彼矣/이ᄋᆡ뎌ᄋᆡ, 尊衣希/尊ᄋᆡᄒᆡ, 月良/ᄃᆞᆯ아, 前良中/前아ᄒᆡ, 汀里也中/나리야ᄒᆡ(믈서리야ᄒᆡ).

㉤ 조격조사-筆留/부드로(균여전). ㉥ 호격조사-郎也/郎이여, 彗星也/慧星이여, 花良/곶아, 矣徒良/의ᄂᆡ아. ㉦ 주제격조사-二肸隱/두블흔, 汝隱/너는, 君隱/君은, 民焉/民ᄋᆞᆫ.

㉰ 어미의 표기-㉠ 종결어미- ⑴설명형 종결어미-知古如/알고다, 獻乎理音如/바도림다, 置內乎多/두ᄂᆞ오다, 四是良羅/넷이어라, 行齊/녀져. ⑵ 의문형 종결어미-何如爲理古/엇다ᄒᆞ리고, 去賜里遣/가시리고, 成遣賜去/일고실가. ⑶ 명령형 종결어미-陪立羅良/뫼셔라아.

㉡ 연결어미-放敎遣/놓이시고, 捨遣只/ᄇᆞ리곡, 嫁良置古/얼어두고, 見昆/보곤, 古召0xF445/고조며, 使以惡只/브리악, 吾下是如馬於隱/내해다마ᄅᆞᆫ.

㉢ 전성어미- ⑴명사형 전성어미-岳音見賜烏尸聞古/오롬 보시올 듣고, 白屋尸置內乎多/ᄉᆞᆲ올 두ᄂᆞ오다, 浮去隱·安支下/ᄠᅥ간 안디하, 明期月良/ᄇᆞᆯ긔ᄃᆞᆯ아.

⑵ 관형형 전성어미-去隱春/간 봄, 直等隱心音矣/고ᄃᆞᆫ ᄆᆞᅀᆞᆷᄆᆡ, 行尸浪阿叱/녈 믌겨랏, 行乎尸道尸/녀올 길, 宿尸 夜音/잘 밤.

⑶ 부사형 전성어미-白良/ᄉᆞᆲ아, 唱良/블어, 入良沙/들어사, 遣也 置古/기텨 두고. 이 밖에 존칭보조어간의 표기에는 ‘賜/ᄉᆞ(시)’와 ‘敎/이시’가 쓰였다. 겸양보조어간에는 ‘白/ᄉᆞᆲ’이 쓰였다. →이두, 차자표기법

참고문헌

『고가연구(古歌硏究)』(양주동, 일조각, 1942·1965)
『국어사개설』(이기문, 민중서관, 1961)
『향가해독법연구(鄕歌解讀法硏究)』(김완진,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차자표기법연구(借字表記法硏究)』(남풍현, 단국대학교출판부, 1981)
『鄕歌及び吏讀の硏究』(小倉進平, 京城大學, 1929)
집필자
남풍현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