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복단 ()

목차
관련 정보
근대사
단체
1919년 11월 서울에서 조직되어 주로 경기도 수원에서 활동한 비밀결사.
단체
설립 시기
1919년 11월
설립자
김태원|안교일|김교선|신봉균|신상균|이정방|이득수|박태선 외
설립지
서울 종로|경기도 수원
전신
구국동지회
후신
구국민단
내용 요약

혈복단(血復團)은 1919년 11월 서울에서 조직되어 주로 경기도 수원에서 활동한 비밀결사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김태원(金泰源)이 조직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혈복단의 주요 활동은 이득수(李得壽)와 박선태(朴善泰)가 조직한 경기도 수원지부에서 이루어졌다.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가입을 추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목차
정의
1919년 11월 서울에서 조직되어 주로 경기도 수원에서 활동한 비밀결사.
변천 및 현황

3 · 1운동 이후인 1919년 11월 20일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김태원과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안교일(安敎一), 김교선(金敎善), 신봉균(申鳳均), 신상균(申相均), 이정방(李鼎邦) 등이 서울 주1 김교선의 집에서 결성한 비밀결사이다. 혈복단은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혈복단은 경기도 수원에 지부를 두었다. 수원혈복단(水原血復團)은 이득수와 박선태가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다. 수원혈복단은 3 · 1운동 이후 전국의 지방에서 조직된 최초의 학생 비밀결사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단체였다.

1910년대에 조직된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계승한 혈복단은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배포와 대한적십자회의 가입 등을 추진하였다. 또한 수원 지방에 있는 기타 청년단체들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하였다.

박선태와 이득수는 1920년 6월 7일 혈복단을 구국민단(救國民團)으로 개칭하고, 각각 단장과 부단장이 되었다.

참고문헌

논문

박환, 「1920년대 초 수원지방의 비밀결사운동-혈복단과 구국민단을 중심으로-」(『경기사학』 2, 경기사학회, 1998)
장석흥, 「大韓獨立愛國團 硏究」(『한국독립운동사연구』 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
주석
주1

종로5정목은 지금의 종로구 종로5가의 일제강점기 명칭이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개편된 동부 어의동 · 하대정동 · 하천변동 · 상대정동과 이교동 · 연지동 일부 지역이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따라 새로 통합되면서 종로5정목으로 칭하였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종로구 종로5정목이 되었고,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종로5가가 되었다.

집필자
윤상원(전북대학교 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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