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에 일본의 강압에 의하여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을 계기로 국권상실의 위기를 감지한 당시 우리 민족의 선각자 내지 지도자들은 국권회복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특히 구국을 위한 교육운동의 전개에 힘을 썼다.
이 같은 교육구국운동의 전개에 따라 전국적으로 수천여 개의 사립학교가 설치되었고, 이들 사립학교 중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학교도 많았다. 협성중학교란 명칭을 가진 사립학교도 함경남도 정평군(1909)과 경성(1910) 등 두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1909년 11월에 함경남도 정평군(郡)에 설치된 협성중학교는 1909년 11월 30일에 신입생을 모집하여 동년 12월에 개교하여 근대적인 중등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협성중학교는 입학자격을 연령 15세 이상의 남자로 하고, 입학시험과목은 독서·작문·산술·체격(體格)으로 하였다.
협성중학교는 개화기에 함경남도에서 근대적인 중등교육을 실시한 대표적인 사립중등교육기관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