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근원은 1899년 6월 16일 일본인 야마모토(山本吉岩)가 창간한 『목포신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41년 2월 10일『전남신보』로 제호를 바꾸었는데, 8·15광복과 더불어 발행이 중단되자 손수겸(孫守兼)이 발행인이 되어 국한문 혼용신문으로 속간호를 내놓았다.
1946년 8월 1일 주식회사 목포일보사가 설립되면서 다시 『목포일보』로 개제되었고, 문재철(文在喆)이 사장에 취임하였다. 타블로이드판 2면제로 발행되던 이 신문은 1947년 4월 화재로 사옥과 인쇄시설이 모두 불타 한 달 동안 발행이 중단되었다. 5월김철진(金哲鎭)이 사장에 취임하면서 사옥과 시설을 복구하고 타블로이드배판 2면으로 속간하였다.
1952년 12월 1일 김문옥(金文玉)이 사장을 맡아 자유당 집권 아래서 민권투쟁의 기수로 활약하였다. 1959년 4월 1일부터 타블로이드배판 4면으로 증면, 발행하였으며, 1962년 10월 30일 윤전기를 들여오는 등 인쇄시설을 확충하였다. 1965년 1월 1일자부터는 제호를 『호남매일』로 바꾸면서 재정난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신문은 사시(社是)를 “신속·정확하고 사회에 목탁이 되는 것을 생명으로 알자. 신문은 사회의 공기(公器)임을 명심하고 밝은 내일의 좌표가 되자. 지역사회의 번영과 지방문화 발전의 기수가 되자.”로 내걸고 새로운 혁신을 꾀하였다.
주요 행사로는 ‘8·15경축대학예술제’ 등을 주최하였다. 1966년 8월 31일김문옥 사장의 사망으로 후임에 장기순(張奇順)이 취임하였다가, 1967년 5월 1일 다시 김병삼(金炳三)에게로 넘어갔다. 1972년부터 불어닥친 전국 신문의 통폐합조처로 운영난을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 1973년 5월 31일 제12777호를 종간호로 자진 폐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