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일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장령, 필선,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만초(萬初)
보옹(葆翁)
이칭
영안군(寧安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3년(선조 36)
사망 연도
1651년(효종 2)
본관
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주요 관직
장령|필선|대사성
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필선,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만초(萬初), 호는 보옹(葆翁). 황해도관찰사 홍춘경(洪春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승지 홍천민(洪天民)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홍서봉(洪瑞鳳)이며, 어머니는 황혁(黃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한림대교(翰林待敎)·이조정랑 등을 지내고, 수찬에 올랐다.

1636년 중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를 지키기 위하여 검찰사(檢察使) 김경징(金慶徵)의 부장(副將) 이민구(李敏求)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싸웠다.

또한 김상헌(金尙憲)·정온(鄭蘊) 등과 척화론을 주장하였으며, 이들이 남한산성에서 내려오는 왕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난이 끝난 뒤 척화론자들의 처벌이 논의될 때 응교로서 부제학 이목(李楘) 등과 함께 그들을 변호하였다.

그 뒤 장령·필선을 거쳐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영안군(寧安君)에 습봉되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와 글씨에 뛰어났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운와집(芸窩集)』
『병자집(丙子集)』
『강화부지(江華府誌)』
『강도록(江都錄)』
집필자
이원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