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복도감 ()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 후기, 사찰의 경제적 지원 내지는 불교 진흥 정책을 위해 설치된 임시 관부.
제도/관청
설치 시기
1332년(충숙왕 복위 1) 이전
폐지 시기
고려 말기
내용 요약

홍복도감(弘福都監)은 고려 후기에 사찰의 경제적 지원 내지는 불교 진흥 정책을 위해 설치된 임시 관부이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이전에 사찰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위해 임시로 설치된 관부로, 1391년(공양왕 3)까지 기록상으로 확인된다. 고려 말에 신흥사대부들이 이를 불교의 폐단을 일으키는 주범 중의 하나로 지적하기도 하였다.

정의
고려 후기, 사찰의 경제적 지원 내지는 불교 진흥 정책을 위해 설치된 임시 관부.
설치 목적

처음 설치한 연대와 그 기능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충숙왕(忠肅王) 복위년(1332)에 이제현(李齊賢)의 맏아들 이서종(李瑞種)이 홍복도감(弘福都監) 판관(判官)을, 정운경(鄭云敬) 또한 충숙왕 대에 홍복도감 판관을 지냈다는 묘지명(墓誌銘)과 열전(列傳)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충숙왕 대 이전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고려사(高麗史)』 「백관지(百官志)」에는 공민왕(恭愍王)대에 판관과 녹사(錄事)의 직제(職制)를 정했다고 하므로, 공민왕 때 직제 정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능과 역할 및 변천사항

직제로는 판관과 녹사가 있어 그들이 실무를 담당하였을 것이나, 일반적으로 도감에는 사(使), 부사(副使)가 설치되고 때로는 판사(判事)[후기에는 주6]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도 사, 부사, 판관, 녹사의 체제를 갖추었을 것이나, 앞서 언급한 이서종과 정운경처럼 판관은 실제 역임한 사례를 찾을 수 있는 반면 녹사의 경우는 그 실제 사례를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다. 또 사, 부사는 일종의 겸직이어서 도감의 해당 업무가 끝나게 되면 본래의 관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판관, 녹사는 비록 권무직(權務職)이라도 본관이기 때문에 그대로 도감에 남아 사실상 명목만 남은 도감의 잔여 업무를 수행하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고려사』의 「백관지」에도 판관과 녹사만이 구성원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의의 및 평가

1391년(공양왕 3), 이 기구의 포(布) 2,000필(匹)을 내어 연복사(演福寺)탑(塔)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충당하였다는 기록은 이 기구의 경제적 위치와 불교의 관계를 살피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도감이 설치되던 당시의 고려에서는 홍건적(紅巾賊)왜구(倭寇)의 침입에 따른 주2을 위한 기도와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명복을 비는 주7인 불교 행사가 자주 거행되던 상황이었다. 더욱이 신돈(辛旽)이 당시의 최고 실무 책임자였다는 시대적 배경을 통하여 볼 때 임시 주3인 홍복도감 등을 통한 사찰의 경제적 지원 내지는 불교 진흥 정책(佛敎振興政策)이 당시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 말, 주4을 정치 윤리로 하는 신흥사대부(新興士大夫)들이 억불 주5 정책(抑佛崇儒政策)으로,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홍복도감을 비롯한 기관의 폐단을 들어 불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1391년에 이르러 이를 폐지하고 그 대신 자섬저화고(資贍楮貨庫)를 세워 주1를 만들자는 논의를 할 정도로, 그 재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이제현처권씨묘지명(李齊賢妻權氏墓誌銘)」

단행본

『『고려사』 백관지 역주』(신서원, 2009)
『고려묘지명집성』(한림대출판부, 2012)

논문

문형만, 「고려특수관부연구」(『부산사학』 9, 부산사학회, 1985)
이정훈, 「고려시대 도감의 구조와 기능」(『한국사의 구조와 전개』, 하현강교수정년기념논총간행위원회, 2000)
주석
주1

고려 말기ㆍ조선 전기에,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 쓰던 종이돈. 발행 초기에는 한 장이 쌀 두 말의 값어치를 가졌으나 그 뒤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져 겨우 쌀 한 되의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유통은 안 되었다. 중종 7년(1512)경에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우리말샘

주2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 우리말샘

주3

정부나 관청. 우리말샘

주4

‘성리학’을 달리 이르는 말. 주자가 집대성한 데에서 이처럼 이른다. 우리말샘

주5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함. 우리말샘

주6

조선 시대에, 중앙에서 각 사(司) 또는 청(廰)의 우두머리가 아니면서 각 관아의 일을 다스리던 직책. 우리말샘

주7

온 나라에서 국민이 모두 하는. 또는 그런 것.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