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1431년(세종 13)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이 되었으며, 사온서직장으로 딸을 동궁에게 바친 공으로 쌀과 콩 30석이 하사되었다.
1433년 도사(都事)가 되고, 1436년 지평(持平)을 거쳐, 1439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1440년 전농시소윤(典農寺少尹)이 되고, 이듬해 장령을 거쳐, 1442년 한성부소윤(漢城府少尹)이 되었다.
1449년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가 되고, 이듬해 겸지병조사(兼知兵曹事)가 되었으며, 1450년(문종 즉위) 병조참의가 되고, 이듬해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어, 한성부윤(漢城府尹)이 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에 이어, 1454년(단종 2)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이듬해 다시 한성부윤이 되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고, 1456년(세조 2) 평양선위사(平壤宣慰使)로서 중화생양관(中和生陽館)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