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몽서(夢瑞), 호는 수백재(守白齋). 홍언도(洪彦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의인(洪義人)이고, 아버지는 증 이조참판 홍대원(洪大源)이며, 어머니는 이항수(李恒壽)의 딸이다.
1778년(정조 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지냈다. 1780년 중종묘에 배향된 박원종(朴元宗) 등 3인과 숙종묘에 배항된 남구만(南九萬) 등 3인을 묘당에서 출향(黜享)시킬 것을 상소하였다가 부수찬 윤행수(尹行修), 지평 강침(姜忱)의 탄핵을 받아 그 해 절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정의현(旌義縣)으로 이배되었다.
그 뒤 1790년 죄명이 효주(爻周)되었다. 저서로는 문집으로 『수백재유고(守白齋遺稿)』 40권이 『남양홍씨족보』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