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내의 북쪽 수문이다. 일명 ‘북수문(北水門)’이라고 하며, 아래에 수문이 있고 그 위에 문루가 있다. 수원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광교천(光敎川)이 여름에 자주 범람하므로 1796년(정조 20) 성곽을 신축하면서 준설하고 남북에 각각 수문을 만들었는데, 그 중 상류에 해당하는 북쪽 수문이다. 성곽 내의 시설물 중 상당수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파괴되었으나 이 부분은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었다.
수문은 모두 7개의 석조아치로 만들어졌는데 가운데 한 칸이 약간 넓고 나머지는 아치 너비가 8자, 높이 7자 8치이다. 아치와 아치 사이는 네 개의 돌기둥을 세워 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다. 아치 위로는 다리돌을 놓아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바깥쪽으로는 벽돌로 낮은 성벽인 첩(堞)을 쌓았다. 첩에는 네모난 대포 구멍을 뚫고 그 위에 소포(小砲) 구멍 14개를 뚫었다.
다리 위 북쪽 가까이에 세워진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翼工式) 건물로 수문 북쪽의 경계와 감시를 할 수 있도록 사방을 개방하였다. 사다리꼴의 높은 주초석(柱礎石) 위에 두리기둥을 높이 세우고 밑에서 한길 되는 높이에 마루를 깔았다. 아래층은 남측의 중앙간을 개방하고 좌우 협간은 벽돌로 막았으며, 좌우 측면에 2층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두었다. 기둥머리에는 간단한 초각(草刻)을 한 초익공을 꾸몄으며 내부의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하였다.
지붕의 각 마루는 회반죽을 바르고, 취두(鷲頭)와 용두(龍頭)를 장식하였다. 북측벽에는 건물에서 약간 거리를 띄우고 판문(板門)을 달았으며 그 바깥쪽에는 짐승얼굴을 크게 그려놓았고 활이나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놓았다. 또한, 각 아치에는 쇠로 만든 살창을 설치하여 이곳으로 적이 침입하는 것에 대비하였으며, 이 수문은 좌우로 성벽에 이어지도록 하였다. 문 주변에는 동쪽으로 언덕이 이어지고 언덕 높은 곳에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아래로 용연(龍淵)이 있으며, 수문 위아래로는 흐르는 물 사이로 넓적한 바위가 드러나 있어 수원성곽 주변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
이 건물은 전란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방어시설을 갖추는 동시에 시내를 관통하는 개천이 범람하지 않도록 물길을 조정하는 구실을 하였다. 또한, 주변의 경관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군사적 · 토목기술적 · 건축미적인 면에서 한국건축의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