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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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여흥민씨 고택 안채 연등천장
부여 여흥민씨 고택 안채 연등천장
주생활
개념
별도로 천장을 만들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 만든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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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별도로 천장을 만들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 만든 천장.
개설

천장은 반자(斑子)라고도 하며 지붕틀이 보이지 않도록 설치하는 별도의 덮개라고 할 수 있다. 천장은 지붕아래에 설치되는 것으로 단열에도 효과적이며 의장적인 역할도 한다. 천장을 천정(天井)으로 쓰기도 하는데 천정은 우물정(井)자 형태의 특수한 천장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보편적인 천장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한자로 표기할 때는 ‘天障(천장)’이라고 하고 한글로 표기할 때는 ‘반자’라고 하는데, 한자를 차음(借音)하여 표기할 때는 ‘斑子(반자)’라고 쓴다. 한옥에서는 방은 대개 천장을 하고 대청은 천장을 하지 않는다. 좌식공간과 입식공간을 구분하였던 것이다. 방은 차분해야하기 때문에 천장을 하고 모두 도배했다. 궁궐이나 사찰 등에서는 우물천장을 하여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소란스러운 실내분위기를 정리하는 효과도 있었다.

내용

연등천장은 가구부재들이 아름다워 천장을 가리지 않아도 충분한 고려시대 주심포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살림집에서는 보통 대청마루 천장을 연등천장으로 한다. 대청마루는 입식생활 공간이기 때문에 천장을 높이 만들려는 목적도 있으며 늘 상주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천장을 가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영주 부석사 조사당 등은 모두 맞배지붕이며 연등천장인데, 팔작지붕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도 연등천장으로 했다. 따라서 팔작지붕이라고 해서 모두 우물천장을 설치하는 것은 아니며, 우물천장은 섬세한 가공이 필요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부유층이 아니면 설치할 수 없었다.

연등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서까래 사이를 막는 개판이나 산자엮기한 후 앙토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어 보인다. 민가에서는 개판 보다는 산자엮기를 주로 했기 때문에 초벌을 흙으로 바르고 정벌을 회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까래 사이가 하얗게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시 움집들은 천장을 가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등천장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궁궐과 사찰 정전 이외에는 민가와 부속건물 등 대부분은 연등천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지혜로지은 집, 한국건축』(김도경, 현암사, 2011)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김왕직, 동녘, 2007)
『한국건축대계4: 한국건축사전』(장기인, 보성각, 2005)
「한국건축 천장의장에 관한 연구」(나연희, 홍익대학교석사논문,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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