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교리역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지점의 평지 가운데 솟아 있는 얕은 대지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미쓰이광산(三井鑛山) 채굴을 위하여 팠던 시굴 구덩이에서 1907년에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후 1913년세키노(關野貞)와 다니이(谷井濟一)가 다시 현장을 답사하였으나 유적구조는 밝히지 못하고 약간의 토기파편만 수집하였는데, 유구(遺構)는 출토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움무덤[土壙墓]일 가능성이 높다.
발견된 유물로는 날이 평행에 가까운 후기양식의 세형동검 1점, 동모(銅鉾) 1점, 十자형 칼자루끝장식[劍把頭飾] 1점, 전한시대의 오수전(五銖錢) 2점, 을자형관금구(乙字形管金具) 2점, 삿갓형자루끝[笠形柄頭] 3점, 일산살대투겁[蓋弓帽] 1점, 숟가락 1점 등 청동제품 12점이 있다. 청동유물 표면에는 철녹이 엉켜붙은 것이 많은데, 이로 보아 철제품도 같이 묻혔으나 모두 삭아 없어지고 흔적만 남은 듯하다.
이 밖에 회청색의 삿무늬[繩蓆文]토기편, 회백색의 바탕흙이 고운 토기편들도 발견되었는데, 한식(漢式) 토기편으로 보인다. 특히, 오수전은 전한 신작(神爵) 2년(서기전 60)의 주조품인 천상횡문(穿上橫文)으로 밝혀져 고분과 청동유물의 연대추정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