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 )

양주 회암사지 부도탑
양주 회암사지 부도탑
건축
유적
국가유산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터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불탑. 사리탑.
이칭
이칭
회암사지 부도탑(檜巖寺址浮屠塔)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楊州 檜岩寺址 舍利塔)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21년 06월 24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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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터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불탑. 사리탑.
개설

회암사지 부도탑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건립된 부도(浮屠) 양식을 취하고 있어 부도탑(浮屠塔)으로 불리고 있다. 부도(浮屠)는 오랫동안 부도(浮圖)와 함께 사용되었는데, ‘Buddha’의 음역(音譯)으로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있었다. 즉, 불교 또는 사찰을 뜻하기도 하고, 불탑을 지칭하기도 하며,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을 의미하는 등 문맥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부도라는 용어 안에 탑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이후에는 부도(浮圖)보다는 부도(浮屠)가 더 많이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승려나 재가신자 등 불교와 관련한 사람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한 모든 조형물을 지칭하였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부도의 의미를 계승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편 승탑(僧塔)은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탑의 양식을 갖는 조형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 변천

조선 초기 부도 양식으로 회암사에 건립된 이후 큰 파손 없이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회암사의 위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석조 유물이다.

내용

회암사지 부도탑은 회암사지 중심 사역에서 다소 벗어난 외곽, 즉 북편 집수정 시설 바로 아래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부도탑은 일부 파손과 마모는 되었지만 결실된 부재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크게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는 평면 팔각형의 여러 부재들을 쌓아 상당히 높게 구성한 점이 특징적이다. 바닥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2층으로 구성하였는데, 하층은 불상 대좌처럼 하대석-중대석-상대석을 순서대로 올렸다. 하대석은 각 면을 사각형으로 구획한 후 구름 문양을 새기고 그 안에 비천(飛天)하는 모습의 용(龍)과 천마(天馬)를 교대로 조각하였다. 중대석은 각 면마다 신비스러운 모양의 줄기 문양을 가득 표현하였으며, 상대석은 상하면에 연화문을 새기고 보이는 면에는 당초문을 장식하였다. 그리고 상층은 중대석과 상대석을 마련하였는데, 중대석은 각 면에 우주를 세우고 그 안에 1구의 신장상을 조각하였다. 신장상은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율동적이고 사실적인 인상이다. 상대석은 연화문과 당초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탑신부는 연화문이 가득 장식된 3단의 탑신 괴임, 정연하게 다듬어진 원형의 탑신석(塔身石), 팔각의 옥개석 등으로 구성되었다. 옥개석은 낙수면에 기왓골이나 기왓등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마루부를 높게 하였으며, 처마부에 추녀를 표현하여 기와지붕을 거의 그대로 모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륜부는 연화문이 장식된 받침대를 비롯하여 여러 단으로 구성된 원형의 보륜(寶輪)을 마련하고 꼭대기에 보주(寶珠)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특징

회암사지 부도탑은 조선시대 부도 양식으로 건립된 사리탑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조형물이다. 그리고 기단부의 각 층 대석에 표현된 문양과 표현 기법들이 궁궐이나 왕릉에 활용된 석물들과 닮아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점은 이 부도탑이 건립될 때 왕실과 관련이 있거나 중앙 관아에 소속된 장인들에 의하여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는 왕실과 관련된 역사일 경우 그 성격을 불문하고 같은 장인들이 파견되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의의와 평가

회암사지 부도탑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계가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 신앙이 여전히 왕실을 비롯한 권력층을 중심으로 신앙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석조 유물이다. 그리고 가장 규모가 크고, 각 부의 문양과 돌을 다듬은 수법들이 우수하다는 점에서 당대의 기술 수준을 짐작케 하는 주목되는 유물이다.

참고문헌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 부도』(엄기표, 학연문화사, 2003)
『한국의 석조미술』(정영호,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조선 전기 부도의 특징 연구」(이수정, 『문화사학』 37, 2012)
「회암사지의 석조 부도와 탑비에 대한 고찰」(엄기표, 『문화사학』 21, 2004)
「조선 전기 구형 부도의 시원에 관한 고찰: 회암사지 부도를 중심으로」(조봉진,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1)
「조선 전기 석조 부도 양식의 일고찰」(정영호, 『동양학』 3, 1973)
「회암사지 사리탑의 건립 연기」(최완수, 『고고미술』 87,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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