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에 있는 여 · 철자 모양 집터, 중도식 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철기류 등이 출토된 원삼국시대 마을 유적.
이칭
이칭
횡성 둔내 원삼국시대 주거지, 횡성 둔내 원삼국시대 집터, 횡성 둔방내리 집터
약칭
둔내 주거지, 둔내 집터
유적
건립 시기
철기시대
면적
1,322.60㎡
소재지
강원도 횡성군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강원도
종목
시도기념물(2003년 1월 18일 지정)
소재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 594번지 외
내용 요약

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에 있는 여 · 철자모양 집터, 중도식 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철기류 등이 출토된 원삼국시대 마을 유적이다. 둔내고등학교의 학교 건물 기초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1983년 강원대학교박물관, 1996년 강릉대학교박물관, 2006년 강원문화재연구소, 2018년 국강고고학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3세기대에 해당하는 원삼국시대 여 · 철 자 모양 집터 10동과 수혈 3기가 확인되었다.

정의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에 있는 여 · 철자 모양 집터, 중도식 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철기류 등이 출토된 원삼국시대 마을 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1983년 둔내고등학교에서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수습되어 알려진 유적이다. 1983년 5월 3일부터 같은 해 6월 8일까지 강원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집터 3동과 주1 1기를 조사하였다.

이후 1996년 9월 3일부터 같은 해 10월 31일까지 둔방내리 문화마을 조성 공사 이전에 강릉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통해 집터 5동을 추가로 조사하였다. 또한 2006년 11월 9일부터 같은 해 12월 13일까지 둔내고등학교 체육관 건축공사에 앞서 강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통해 집터 5동과 수혈 1기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2018년 11월 7일부터 같은 해 11월 29일까지 둔내중고등학교 체육관 건축공사에 앞서 국강고고학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통해 집터 1동과 수혈 1기를 조사하였다. 현재까지 총 14동의 집터와 3기의 수혈이 조사되었다.

형태와 특징

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에서 발견된 14동의 집터는 주축 방향에 따라 시기가 다른 두 개의 마을이 확인되었는데 제1주거군은 N67.73W이고, 제2주거군은 N47.76W이다.

집터의 형태는 강릉대학교 2호(10.6m×6.4m), 강원문화재연구소 1호(13.4m×8.6m) 및 국강고고학연구소(11.95m×7.42m)가 여자(呂字) 모양인데, 출입구가 파괴된 나머지 집터의 뒷벽이 공통적으로 둔각상을 띠고 있는 점에서 대부분이 여 · 철자(呂 · 凸字)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의 내부 시설로는 주2와 벽채 시설이 있다. 화덕자리는 집터의 뒷벽 방향으로 치우친 중앙에 냇돌을 깔고 뒤쪽에 불막음돌을 세운 후, 화덕자리 주위에 점토둑을 쌓아 만든 소위 중도식 화덕자리이다.

벽채는 벽면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둥근 기둥을 배치한 것(강릉대학교 3호 · 5호, 국강고고학연구소)과 벽채를 판재로 세워 보강한 것(강원대학교 3호, 강릉대학교 1호 · 2호 · 4호) 등 두 가지 구조가 발견되었다.

집터 내 출토 토기류 가운데 중도식 주3는 아가리가 길게 밖으로 구부러진 긴몸통독, 바리, 미니어쳐 시루, 짧은목항아리 등이 있고, 주4는 계란모양토기, 시루, 깊은바리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철기는 쇠화살촉, 쇠낫, 쇠손칼 등이 출토되었다. 국강고고학연구소 집터에서는 97점의 유리옥이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집터의 구조와 형식 및 출토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3세기대 마을로서, 집터와 출토 유물이 북한강 유역 및 영동 지역에서 확인된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파주, 김포, 화성, 안성, 평택 등 중부 지역의 서쪽에서 발견되는 원삼국시대 방형 집터와는 크게 다르다. 횡성 둔내마을은 남한강 유역(섬강)까지 여 · 철자 모양 집터가 분포함을 확인시켜 준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2003년 1월 18일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횡성 둔내유적』(국강고고학연구소, 2020)
『횡성 둔내유적』(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한성백제 고고자료집』 상(기전문화재연구원, 2005)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횡성 둔내 주거지』(강릉대학교 박물관, 1997)
『횡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강원향토문화연구회, 1995)
『둔내』(강원대학교박물관, 1984)

논문

신수현, 「남한강유역 원삼국시대∼한성백제기 주거지 변화양상」(한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이준민, 「남한강 유역 원삼국시대 취락의 편년과 변화」(숭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6)
박경신, 「전환기 중부지방 원삼국시대 취락의 편년과 전개 양상」(『국가형성기 한성백제의 고고학적 검토』, 한국상고사학회, 2011)
심재연, 「남한강 중상류지역의 철기시대 문화의 특징–최근 발굴자료를 중심으로-」(『고고학』 6-2, 서울경기고고학회, 2007)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주석
주1

땅 표면에서 아래로 파 내려간 구멍. 고대인(古代人)들이 주거 양식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우리말샘

주2

선사 시대의 집터에서 난방과 음식 마련을 위하여 불을 피우던 자리. 가장자리의 바닥에 흙 또는 돌을 두르거나 깔았다.    우리말샘

주3

청동기 시대에 사용한 무늬 없는 토기. 지역에 따라 팽이형 토기, 미송리식 토기, 화분형 토기 따위가 있으며 빛깔은 붉은 갈색이다.    우리말샘

주4

토기의 몸통을 다지거나 부풀리기 위해 두들개로 두드려서 삿무늬나 문살무늬가 생긴 토기.    우리말샘

집필자
박경신(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과장)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