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화전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조선시대 집터와 구덩이가 중층적으로 발견된 마을유적.
이칭
약칭
화전리유적
유적
건립 시기
청동기시대~조선시대
소재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화전리
내용 요약

횡성화전리유적(橫城花田里遺蹟)은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조선시대 마을이 중층적으로 발견된 마을유적이다. 1997년 강원대학교박물관이 청동기시대 집터 9동, 구덩이 4기, 도랑 1기, 원삼국시대 집터 10동, 구덩이 유구 5기, 조선시대 구덩이 유구 11기, 시기를 알 수 없는 화덕자리 4기 등 총 44기를 조사하였다. 이 유적은 청동기시대 석기 제작 공정과 원삼국시대 철기 제작 공정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다.

정의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조선시대 집터와 구덩이가 중층적으로 발견된 마을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횡성화전리유적은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 갑천면 화전리 웃말 일대에 해당하며, 1994년 지표 조사와 1996년 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997년 강원대학교박물관(강원고고학연구소)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2개의 지구로 나누어 실시되었으며,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조선시대 등 총 3개의 문화층을 확인하였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집터 9동, 구덩이 4기, 도랑 1기, 원삼국시대 집터 10동, 구덩이 5기, 조선시대 구덩이 11기, 시기를 알 수 없는 화덕자리 4기 등 총 44기이다.

형태와 특징

청동기시대 집터는 방형, 장방형, 원형으로 하천의 흐름 방향과 직교하거나 평행하다. 구덩이는 원형과 방형이 혼재해 있다. 청동기시대 유구 내부에서는 주1, 주2, 주3 등의 토기류와 반달모양돌칼, 간돌화살촉, 간돌도끼, 간돌칼, 돌끌 등과 함께 많은 수의 석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 집터는 대다수가 철(凸)자형으로 남북 방향 및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편서향을 하고 있어 청동기시대 집터들과 대비된다.

내부에서 별다른 시설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원삼국시대 집터 안에서는 중도식 민무늬토기 긴몸통독, 바리, 시루, 뚜껑, 미니어처, 주4, 짧은목항아리의 토기류와 손칼, 화살촉, 낫 등의 철기류 및 송풍관과 많은 수의 주5가 발견되었다.

조선시대 유구는 부정형(不定形)이 많으며 주6, 백자, 질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횡성화전리유적은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조선시대 유구가 층위를 달리하여 분포하는 중층의 마을 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유구 안에서는 많은 분량의 석편들이 발견되어 석기 제작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에서 발견된 유물의 양상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 중기 마을에 해당한다.

원삼국시대 집터 안에서는 송풍관과 슬래그 등 철기 생산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3세기 대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유구와 출토 유물은 화성현의 현청(縣廳)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성백제 고고자료집』 상(기전문화재연구원, 2005)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최복규, 최승엽, 이은희, 『횡성댐 수몰지역 내 문화재 발굴조사보고서(2) - 횡성 화전리 주거지유적 발굴조사 보고』(한국수자원공사, 1998)
『횡성 화전리 청동기 · 철기시대 집자리유적』(강원고고학연구소, 1998)

논문

신수현, 「남한강유역 원삼국시대∼한성백제기 주거지 변화양상」(한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박영구, 「강원영서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전개양상」(『숭실사학』 36, 숭실사학회, 2016)
이준민, 「남한강 유역 원삼국시대 취락의 편년과 변화」(숭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6)
심재연, 「남한강 중상류지역의 철기시대 문화의 특징–최근 발굴자료를 중심으로-」(『고고학』 6-2, 서울경기고고학회, 2007)
주석
주1

아가리 바로 밑에 작은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나 있는 토기. 청동기 시대에 가장 유행하였던 민무늬 토기이다.    우리말샘

주2

그릇의 겉에 붉은 칠을 바르고 문질러 닦아서 붉고 반들반들하게 만든 토기(土器). 신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다.    우리말샘

주3

청동기 시대에 사용한 무늬 없는 토기. 지역에 따라 팽이형 토기, 미송리식 토기, 화분형 토기 따위가 있으며 빛깔은 붉은 갈색이다.    우리말샘

주4

토기의 몸통을 다지거나 부풀리기 위해 두들개로 두드려서 삿무늬나 문살무늬가 생긴 토기.    우리말샘

주5

광석을 제련한 후에 남은 찌꺼기.    우리말샘

주6

조선 시대에 만든 자기의 하나. 청자에 백토(白土)로 분을 발라 다시 구워 낸 것으로, 회청색 또는 회황색을 띤다.    우리말샘

집필자
박경신(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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