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습비곡현(習比谷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습계(習磎)로 고쳐 금양군(金壤郡 : 지금의 통천)의 영현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흡곡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248년(고종 35)에 현령을 두었다. 1596년(선조 29) 통천에 합쳤다가 뒤에 다시 분리하였다. 1895년(고종 32) 흡곡군으로 되었으나 1910년통천군에 편입되어 흡곡면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강원도와 함경도의 접경지역으로 태백산맥의 동쪽 사면을 차지하는 해안지역이었다.
태백산맥의 기죽산(騎竹山)에서 뻗은 많은 산줄기가 해안지방으로 뻗쳐 있었으며, 십이현천(十二峴川)·한교천(寒橋川)이 계곡을 흘러 동해로 흘러든다.
해안지방의 시중호(侍中湖)는 석호로서, 물이 맑고 주위에 송림이 우거져 당시에 이름난 경승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쪽의 통천과 북쪽의 안변을 연결하는 해안도로가 발달하였다. 이곳의 진상품으로 인삼·대왕풀뿌리·산약·말린문어·말린대구·말린홍합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