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년 일본인이 울릉도를 점거했을 때 삼척영장인 장한상이 울릉도를 수토한 후 남긴 기록으로 일본에 대한 방비책과 울릉도의 동굴 속에 대한 기록을 남긴 중요한 자료이다.
장한상이 1694년 울릉도를 수토하면서 기록한 내용을 1782년 이후에 외손이 필사했다. 현재 3종의 필사본이 남아 있는데, 의성 조문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울릉도 수토를 출발하면서 돌아올 때까지 울릉도에서 보고 관찰한 내용을 기록한 자료로 울릉도로의 항해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기후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지형에 관한 기록과 식생과 동물에 관한 기록도 기술되어 있으며 섬의 곳곳에 관찰된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동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적어 당시의 형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정부에서 공도정책을 실시한 이후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에 대한 기록으로 돌무덤과 가옥의 흔적 등을 기술하였으며, 울릉도에는 100여년 정도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한 울릉도사적에는 울릉도 동남쪽 300여리에 섬이 하나 있다고 하여 독도를 지칭하고 있음으로 판단되어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울릉도의 자연환경은 농업이나 어업발달이 어려우며 기후도 사람이 거주하기에 어렵다고 판단하였으나, 일본인들의 불법적인 점거에 대비할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울릉도에 분포하고 있는 식생은 동백, 자단, 측백나무, 황벽, 금목, 엄나무, 홰나무, 느릅나무, 닥나무, 산초나무, 단풍나무, 계수나무, 잣나무, 대나무 등을 열거하고 있으며, 동백과 자단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고 하였다. 동물로는 까마귀, 갈매기, 고양이, 쥐 등 만이 있을 뿐이고, 어류도 문어(가지어로 판단)만이 있다고 하였다.
오랑캐와 왜구의 침입에서 국민들을 보호하고자 울릉도 거주민을 모두 본토로 옮기고 공식적으로 사람을 거주하지 못하게 하였던 울릉도를 정부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돌보아 왔음을 확인시켜주는 기록이며, 17세기 말 울릉도의 모습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더구나 독도의 인식,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는 대책마련을 고심하고 있고, 당시의 식생 및 동물의 분포까지 보고하고 있어 당시의 울릉도에 관한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울릉도에 관한 정황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이용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