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는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과 하양읍, 서쪽으로는 북구 · 경상북도 칠곡군, 남쪽으로는 경산시,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영천시 신령면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36′∼128°45′, 북위 35°50′∼36°00′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82.17㎢이고, 인구는 34만 9728명(2015년 현재)이다. 구청은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 소재하고 있다.
북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북부 산지는 남동의 초례봉(醮禮峰)에서 시작해, 북서 남동 방향의 능선을 따라 환성산(環城山)을 거쳐 이어진다. 그리고 갓바위와 인봉(印峰)에서 북서로 향하여 주봉인 팔공산(八公山)과 가산바위까지를 연결하는 팔공산지(八公山地), 팔공산지를 둘러싼 도덕산(道德山), 응해산(鷹蟹山), 응봉(鷹峰), 문암산(門巖山), 용암산(龍巖山), 능천산(綾泉山), 무학산(舞鶴山), 태실봉(胎室峰) 등의 환상산맥(環狀山脈)으로 이루어져 있다.
팔공산지와 환상산맥 경계부에서는 지질의 차이로 인해 사면 경사가 완만하고 해발고도가 낮은 크고 작은 다수의 소 분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 분지에는 선상지 및 선상지성 하안단구가 분포하고 있다.
지세는 전체적으로 북고남저형 구조이다. 남서쪽은 금호강 및 신천 주변의 평야로, 표고 200m 이하의 지형이 기존 시가지 및 하천변 충적평야를 따라 전체 면적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동대구역 주변의 시가지는 표고 50m 내외이고, 동촌 · 안심 · 불로 등의 지역은 표고 50m 이하가 대부분으로 저평한 지역이다. 반면, 팔공산 지역의 주변 산지는 표교 200m 이상이고, 산록부의 기존 취락지역은 대체로 표고 150m 내외이다. 이밖에 금호강 주변 및 대구공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도 표고 100m 이상의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하천은 금호강과 그 지류인 신천, 지묘천, 불로천, 율하천, 숙천, 동화천, 능성천, 용수천, 오목천이 있으며, 이외에 소하천 37개가 있다. 금호강은 동구 남부에 동서로 관류하여 경산시 및 수성구와 경계를 이루며, 신천은 신암동과 신천동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중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용수천과 능성천은 동화천과 합류하여 공산저수지로 유입된다. 동화천은 하류에서 지묘천과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북구 동서변동 지역에 이르러 금호강과 합류한다.
또한 동촌 지역의 불로천과 방촌천, 안심지역의 율하천과 숙천천은 각각 분산된 수계를 이루고, 남류하여 금호강으로 유입된다. 금호강과 그 지류인 소규모 하천이 합류하는 지역에는 습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습지로는 안심습지, 율하천과 금호강의 합류지점을 중심으로 발달한 팔현습지 그리고 동화천 습지가 있다. 그 외에 공산지, 단산지, 가동지, 중동지, 신덕지, 노하지, 분암못 등의 저수지들이 팔공산지 남쪽 사면과 금호강 사이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대구는 북동부와 남부가 높은 산들에 의해 가려져있고, 서부만이 상대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지형적인 특성으로 겨울에는 춥고 여름은 무더운 내륙분지의 기후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2004년에는 연 평균기온이 14.8℃로 2003년보다 높았으며, 월 평균기온은 7월이 27.3℃로 가장 무더웠고, 1월이 0.8℃로 가장 추웠다. 1973년∼2002년까지 대구 지역의 30년간 강수량은 1,035.8㎜이고, 1년 중 6∼9월에 비가 가장 많이 내렸다.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가 적게 내린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사방을 둘러싼 산으로 인해 바다에서 몰려오는 비구름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총 강수량은 1,222.4㎜이며, 월 강수량은 8월이 370.3㎜로 가장 많았고, 1월은 1.2㎜로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다. 특히 동구 금호강 남서쪽의 동대구역 주변 시가지에는 산업화와 도시발전에 따른 고층건물의 입지로 주변지역과 구별되는 독특한 도시미기후(都市微氣候)적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괴전동 무문토기 산포지에는 무문토기편, 석기 등이 산재하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대개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내동 유적에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고인돌, 삼국시대의 분묘군이 위치하고 있다. 그 외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지로는 신천동 유적지가 있다.
원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봉무토성(鳳舞土城)을 들 수 있다. 봉무토성은 군사적 목적이 아닌, 이 일대를 배경으로 거주하던 대규모 세력집단의 도피용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통해 동구 지역에는 적어도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으며, 원삼국시대에는 이미 토성을 쌓을 정도의 강력한 정치집단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지역은 신라시대 대구현(大丘縣)에 속하지 않고 경산군(慶山郡)에 소속되어 있었다. 삼국시대에 동구를 제외한 대구광역시의 다른 구 · 군은 수창군(壽昌郡)의 영현었던 대구현, 팔리현(八里縣), 하빈현(河濱縣) 그리고 화원현(花園縣) 등에 속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현재 대구광역시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정치세력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후삼국 혼란기 이 지역은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으로 신라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 인식되었으며, 역사상 유명한 동수대전의 격전지가 되기도 하였다. 동수대전은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현재의 팔공산 자락 지묘동에서 벌인 전투이다. 견훤의 공격으로 신라는 위기를 맞이하여 고려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이에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견훤의 군대를 정벌하기 위해 경주로 향하던 중 현재의 은해사 입구에서 처음으로 격돌하였다. 여기에서 패한 고려군은 후퇴하여 다시 현재의 지묘동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견훤의 후백제가 대승을 거두게 된다. 고려는 신숭겸, 김락 등의 장군을 잃게 되었고, 왕건은 겨우 살아남아 도주하게 되었다. 현재에도 동구에는 이 전투와 왕건에 관련된 설화 · 지명 등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판각한 초조대장경을 팔공산에 위치하고 있는 부인사에 보관하였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성종과 현종 때, 세 차례에 걸쳐 거란군이 침입해 오자, 이를 불교의 신앙으로 물리치고 국운의 장구함을 염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경판은 몽고 침입 때 모두 불타 버렸다. 그리고 이곳 부인사는 고려시대 무신 집권에 항거하여 봉기한 승려들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19년(세종 1) 대구현(大丘縣)이 대구군(大丘郡)으로 승격하여, 동구 지역 일부가 대구군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1466년(세조12) 다시 대구가 군에서 도호부로 승격함에 따라, 동구 지역은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관할의 해안현(解顔縣)과 수성현(壽城縣) 일부에 속하게 되었다.
동구 지역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8도(道) 체제가 폐지되고, 전국에 23개의 부가 설치됨에 따라 대구부에 속하였다가, 다음 해인 1896년 전국이 다시 13개 도로 편성됨에 따라 경상북도 관할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새로운 부제 실시로, 대구부의 영역이 대구면으로 제한되었고, 이에 따라 대구면을 제외한 27개 면은 달성군(達城郡)에 속하게 되었다. 1938년 10월 대구부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동구 지역은 중동, 신천동 등의 14개 동을 관할하는 대구부 수성면이 되었고, 이러한 대구부의 영역 확대와 인구 증가에 따라 효율적인 행정업무 수행을 위해 1938년 11월 2일 수성면을 관할하는 동부출장소가 개설되었다.
광복 후, 1949년 지방자치법 실시로 대구부가 대구시로 승격되어 대구시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57년 12월 12일 동촌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4호 구제 실시에 따라 동부출장소와 동촌출장소가 통합, 동구로 승격되어 1월 16일 동구 동촌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5년 10월 1일 구간 경계 조정이 실시되어 북구 대현동 일부가 편입되었고, 신암동 3·6동 일부가 북구에 편입되었다. 또한 신암5동이 3동으로, 검사1동이 도동에 통합되었으며, 검사2동이 검사동으로 개칭되었다.
1976년 8월 1일 동구 동촌 출장소가 시 직할출장소로 승격되었고, 1979년 5월 1일 효목동이 효목1동과 2동으로 분동 되었다. 1980년 4월 1일 동구가 동구와 수성구로 분구 되었다. 이로 인해 동촌출장소는 폐지되었고, 구청 소재지가 신천동으로 이전되었다.
1981년 7월 1일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읍 전역과 달성군 공산면 전역을 편입하게 되었고, 안심읍 전역에 안심출장소가, 공산면 전역에 공산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2년 9월 1일 안심출장소와 공산출장소 관할구역에 안심1·2·3동, 공산 1동 등 4개 행정동이 설치되었다. 1983년 3월 15일 공산출장소가 폐지되었고, 관할구역에 안심4동과 공산2동의 2개 행정동이 설치되었다. 1985년 12월 1일에는 불로동과 봉무동이 불로봉무동, 둔산동과 부동이 둔산부동으로 통합되었다.
1986년 12월 22일 구청 소재지가 신천동에서 신암동으로 이전되었다. 1987년 1월 1일 관할구역 변경이 이루어져, 신암4동 일부가 북구 대현동으로, 공산2동 관할의 연경동이 북구 연경동으로, 수성구 가천동 일부가 율하동으로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구가 자치구로 승격되었다. 1990년 6월 1일 행정동 관할구역 변경으로, 신암4동이 신암4동과 5동으로 분동 되었고, 1992년 10월 14일 공산동의 미대, 내동이 공산1동으로 변경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동구는 대구직할시가 광역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구광역시 동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98년 9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6개동이 20개 동으로 통합되었다. 1998년 9월 21일 안심출장소가 폐지되었고, 1999년 9월 1일 동 기능전환 실시 및 주민자치센터 설치 · 운영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 등 많은 국가지정유산과 시도지정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현재,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 13개, 시지정문화재(현, 시도지정유산) 32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 24개(지정유산 20개, 등록유산 4개) 등으로 대구광역시 전체 문화재(현, 국가유산)(193개)의 35.7%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비지정유산이 분포하고 있다.
국가지정유산인 보물로는 도학동 팔공산 동화사의 동화사 대웅전(보물, 2008년 지정), 동화사 극락전(보물, 2021년 지정), 동화사입구 마애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963년 지정),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동화사 금당암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동화사아미타회상도(보물, 2009년 지정),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보물, 2010년 지정), 동화사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도학동승탑(보물, 1975년 지정), 도학동 사명당유정진영(보물, 2006년 지정), 동화사 삼장보살도(보물, 2012년 지정), 동화사 수마제전(보물, 2021년 지정)이 있으며, 도학동 북지장사에는 북지장사 대웅전(보물, 1984년 지정), 중대동 파계사에는 대구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1989년 지정), 파계사 영산회상도(보물, 1995년 지정), 파계사 원통전(보물, 2013년 지정), 영조대왕 도포가 있다. 영조대왕 도포는 1987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시지정유형문화유산으로는 도학동 팔공산 동화사의 동화사 부도군, 동화사 염불암마애여래좌상 및 보살좌상, 동화사 염불암 청석탑이 있으며, 북지장사에는 북지장사 삼층석탑,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이 있다. 동화사 부도군은 1986년, 동화사 염불암마애여래좌상 및 보살좌상은 1988년, 동화사 염불암 청석탑은 1988년, 북지장사 삼층석탑은 1982년,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1988년에 전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신무동 부인사에는 부인사 석등(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부인사 서탑(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부인사 부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가 있다. 한편 용수동 팔공산 정상에는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신무동 마애불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신무동 삼성암지마애약사여래입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이 입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송정동 석불입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봉무동 봉무정(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미대동 성재서당(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옻골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 소장 전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등이 있다.
시도무형유산으로는 신암3동 가곡, 신암3동 살풀이 평광동 공산농요 등이 전승되고 있다. 소목장은 1996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지정해제되었다. 신암3동 가곡은 1989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신암3동 살풀이는 1995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평광동 공산농요는 1990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문화유산자료에는 중대동 파계사의 파계사 설선당(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파계사 산령각(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파계사 적묵당(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파계사 진동루(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파계사 기영각(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으며, 신무동 부인사 일명암지석등(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도학동 부도암 부도(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동화사 부도암 신중탱(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006년 지정), 동화사 죽암당 대선사선찰진영(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006년 지정)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용수동의 수릉향탄금계표석(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수능봉산계표석(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봉무동 독암서당(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평광동 첨백당(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도동 문창공영당(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도동 문창공영정(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평광동 효자강순항정려각(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 둔산동 최흥원정려각(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006년 지정), 둔산동 수구당(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006년 지정) 등 다양한 문화재자료가 있다.
그밖에 비지정유산으로는 도학동 동화사 영산전, 동화사 비로암 대적광전, 동화사 염불암 극락전, 동화사 영산전 삼층석탑, 동화사 대웅전 동쪽 삼층석탑, 중대동 파계사 배석, 파계사 석조부도, 파계사 석등, 신무동 부인사 배석, 부인사 탑재 및 부도재, 부인사 당간지주, 용수동 마애불두상, 팔공산 정상부 팔공산 제천단 등의 불적건조물 13점과 각산동 마을뒷산 각산동 사지, 그리고 도학동 동화사, 중대동 파계사, 도학동 북지장사, 도동 관음사, 능성동 관암사, 신무동 부인사 등 전통사찰 6곳, 신무동 부인사지 등을 들 수 있다.
사적으로는 불로동의 대구불로동 고분군(사적, 1978년 지정)이 있고, 내곡동의 내곡 모감주나무군락(대구광역시 기념물, 1990년 지정), 봉무동 고분군(대구광역시 기념물, 2006년 지정), 봉무동 봉무토성(대구광역시 기념물, 1988년 지정), 도동 용암산성(대구광역시 기념물, 1988년 지정), 괴전동 무문토기 산포지, 팔공산 용수동 와요지 등의 유적지가 있으며, 대구 백불암고택과 용수동 당산 등의 민속자료도 있다. 대구 백불암고택은 200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용수동 당산은 1995년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한편 도동에 위치한 측백수림(側栢樹林)은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2개교, 중학교 12개교, 고등학교 12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특히 특수학교인 대구선명학교는 정신지체자를 대상으로 한 특수교육기관으로 덕곡동에 입지하고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원은 1692년(숙종 18) 건립된 백원서원과 1701년 건립된 백안동 청백서원, 1777년(정조 원년) 건립된 지묘동 평천서원, 그리고 1784년 건립된 불로동 유효서원 등이 있다.
서당으로는 미대동 성재서당(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이 1626년에 설립되었다. 이곳은 조선 인조 때 선비 채명보(蔡明輔)가 정자를 짓고 만년에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그 뒤 후손들이 선생의 덕행을 널리 기리고자 새로 짓고 ‘성재서당’이라 이름을 고쳤다.
봉무동 독암서당(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은 이 지역에 사는 경주 최씨 문중에서 세운 서당으로 1865년(고종 2)에 세워졌다. 서당 이름을 ‘독암’이라 한 것은 서당 서쪽에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싸움에서 견훤에게 패하고, 혼자 피신해 앉아 있었다는 독좌암이 있어, 따온 것이라 한다.
그리고 평광동 첨백당(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은 우효중의 효행과 우명식의 충성심을 기리고, 광리에 거주하는 단양 우씨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첨백당이라는 이름은 우명식의 묘소가 있는 ‘백밭골을 우러러보는 집’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 1896(고종 33) 건립되었고, 1924년 중수하였다.
근대 교육시설인 동내동 동호서당(東湖書堂)은 황경림(黃慶霖)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 동호사(東湖祠)로 불렀으나, 건립 이후 후학들을 강학하기 위해 서당으로 중수하였다. 『동호서당중수기(東湖書堂重修記)』에 의하면 최동집, 손처눌 등도 이곳에서 수학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대구기상대는 1907년 1월 3일 대구측후소로 포정동에 설립되었다가, 1937년 1월 1일 신암1동으로 이전하였으며, 2013년 9월 효목동으로 다시 이전하였다. 현재 대구광역시 및 경북남부내륙지역인 구미시, 김천시, 경산시, 영천시, 청도군, 칠곡군, 군위군, 고령군, 성주군의 기상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문화공간으로는 공연시설로 공공 공연장 1개, 영화상영관 2개가 있으며, 전시시설로 화랑 2개, 지역문화복지시설로 구민회관과 청소년회관이 있다. 이밖에도 1995년 개관한 동부도서관, 2000년 개원한 팔공문화원, 지역 언론기관인 『영남일보』 등이 있다.
또한 아양아트센터는 부족한 문화공간 및 체육시설 확충으로 지역민의 체육 · 휴식 · 화합 · 교육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2004년 효목1동에 개관했다. 이곳은 ‘2004 대구 아름다운 건축상 금상’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 3월 아양아트센터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동부여성문화회관은 신암4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 여성들을 대상으로 취미교육, 기술교육, 교양교육, 상담 등 3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속 단체로는 대구여성오케스트라, 여성합창단, 달구벌주부연극단이 있으며, 여성들만의 상설 수영장도 운영하고 있다.
효목2동 팔공정보문화센터는 동구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문화센터로 주민 컴퓨터교실과 노래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컴퓨터 교육장은 교육시간 이외에 무료 인터넷 이용시설로 개방하고 있다.
2000년 백안동에 개원한 동구 팔공문화원은 동구 지역 문화의 거점으로서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전제 아래 지역민들의 문화 복지 향상을 위해 설립되었다. 특히 이 문화원 주관으로 2000년 이후 매년 9월 ‘팔공고려문화제전’이 열리고 있다. 이 축제는 팔공의 역사, 겨레의 용틀임이란 기치아래, 전국에서 유일하게 후삼국시대 고려가 민족 통일의 과업을 이루어 가는 역사적 과정과 이 지역 문화유산을 접목시켜 대중에 알리는 대표적인 향토문화축제이다. 2001년 정부로부터 지방의 특색 있는 4대 향토축제로 선정되었으며,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편 종합사회복지관으로는 서호동 대구종합사회복지관, 신기동 안심종합사회복지관, 율하동 안심제1종합사회복지관, 입석동 동촌종합사회복지관, 신천3동 제일기독사회복지관 등이 있다. 그리고 불로동 노인복지회관에서는 노인대학과 노인주관보호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서호동 동구의료복지회관에서는 노인, 장애인 등의 무료진료와 노인 무료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천1·2동 청소년 문화의 집, 효목2동 동구자원봉사센터, 신암동 동구평생학습센터, 미대 · 내동 정보화 마을 내에 위치하고 있는 정보화시범마을센터, 그리고 동구노인회지회의 주관으로 실시되는 ‘팔공어르신대학’ 등 사회복지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동구 신암3동 살풀이춤은 오랜 역사를 지닌 남도무속무용 계열의 춤으로 대구광역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용수동 당산(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1995년 지정)은 그 유래와 특별한 전설은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이 마을을 개척한 배씨와 구씨가 마을 입구에 나무를 심고 돌을 쌓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용수동의 당나무와 당은 마을 개척 시기와 비슷한 300여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다. 제사는 마을의 무사평안과 동민들 가가호호의 풍요와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1명의 제관을 선출하여 음력 정월 보름날 새벽에 지내며, 당굿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없어지게 되었다. 현재 당나무와 돌로 조산(造山)한 당(堂)만 남아있다.
팔공산은 신라시대에는 부악(父岳), 중악(中岳), 또는 공산(公山)이라 불렸으며, 고려시대에는 ‘공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지금의 팔공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팔공산의 ‘공산’은 우리말로 곰뫼 즉 웅산(熊山)이란 뜻이다. 고대에 곰은 신, 신성의 뜻을 가졌는데, 곰나루(熊津)가 공주가 되듯, ‘곰’이 ‘공’으로 표기되었다.
공산이 팔공산이라 불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통일신라 말기 벌어진 왕건과 견훤의 공산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해 신숭겸을 비롯한 여덟 장수가 순절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여덟 고을에 걸친 산이라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설, 신라 헌덕왕 때 심지대사가 진표율사로부터 받은 8간자를 동화사에 봉안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설, 원효대사의 100명 제자 가운데서 여덟 분이 득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또한 사대주의 모화(慕華) 사상가들이 중국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도학동의 동화사 염불암 극락전 뒤쪽에 있는 바위 좌우 양면에는 여래상과 보살상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바위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 암자를 짓게 되었는데, 늘 암자 옆에 있는 바위에 불상을 새기고 염원하는 불심 깊은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암자 부근에 안개가 끼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스님은 끼니도 잊은 채 불경을 계속 읽었다. 칠일 째 되던 날, 아침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주위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스님이 그렇게도 원했던 불상이 바위 양쪽에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문수보살과 아미타여래였다. 그런데 문수보살의 오른쪽 팔꿈치 바로 옆에는 10㎝ 정도 되는 구멍이 하나 있어서 매일 한 사람이 먹을 정도의 쌀이 나왔다. 하지만 욕심 많은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막대기로 구멍을 쑤셨고, 그 이후로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중대동에 있는 파계사(把溪寺)는 조선 영조(英祖)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肅宗)이 어느 날 숭례문 근처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고는 기이하게 여겨 용과 관계되는 ‘용피(龍披)’라는 이름을 가진 파계사의 스님을 찾아 왕자 탄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했다. 그 후 숙종은 숙빈최씨에게서 아들을 얻었는데, 이 왕자가 훗날 영조였다. 숙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 공을 칭찬하고, 용피 스님에게 ‘현응조사(玄應祖師)’라는 법명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租稅)를 받아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대신 숙종 조상의 어패(御牌)를 파계사에 모시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는 어패를 파계사에 모심으로써 당시 양반들의 행패를 막아보기 위함이었다.
숙종은 파계사에 어패를 모시도록 하고, 절 입구에 하마비(下馬碑)를 세우도록 하였다. 파계사 기영각(祈永閣)에는 현재 성종 · 숙종 · 덕종(성종의 생부) · 영조의 어패가 모셔져 있고, 입구에는 하마비가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지금도 영조가 11세 때 써 보냈다는 ‘자응전(慈應殿)’이라는 글씨가 성전암 마루 위에 걸려 있다. 그리고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음보살상 개금 공사 때에는 파계사가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영조의 도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도동에 있는 용암산성 주변에서는 삼국시대 토기 조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이 성에 주둔하면서, 왜병들과 격전을 치렀는데, 그때 판 샘을 옥천(玉泉)이라고 부른다. 이는 항상 옥같이 맑고 차가운 물이 솟아난다는 의미이다.
팔공산 문턱의 도학1동에는 학부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옛날 이 마을 위쪽 산에는 성질이 난폭한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곤 했다. 호랑이가 매일 밤마다 횡포를 부렸기 때문에, 결국 마을 주민들은 아래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마을 위쪽 산의 장성사라는 작은 절 아래쪽의 큰 바위를 범바우(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도 그 바위 아래쪽으로는 예전의 집터가 발견되고 있다.
동구 방촌시장 맞은편 둔산동에는 경주최씨 성을 가진 20여 가구가 모여사는 옻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남쪽을 제외한 동 · 서 · 북쪽의 모든 산에 옻나무가 많아 옻골이라는 이름이 붙어지게 되었다. 이곳에 옻나무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옛날, 마을을 지나가던 어느 노인이 마을 가운데 있던 정자에 금호강 물이 보이면 지기(地氣)가 기괴해져 마을이 망할 것이라고 하였고, 이에 마을 사람들이 동네 주변에 옻나무를 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묘동의 신숭겸 장군 유적지 일대는 과거 오동나무숲으로 덮여 있었고, 공산전투의 최대 격전지였다. 이곳 주변에는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나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군사들이 크게 패했다는 파군(破軍)재, 공산전투에서 패배한 왕건이 지묘동 뒷산에 피신하여 잠시 휴식을 취해 ‘왕건을 살렸다’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왕산(王山), 왕건이 도주하다 이 지역에 이르렀는데, 어른들은 피난 가고, 어린아이들만이 남아 있었다는 불로동(不老洞), 겨우 위험을 피해 이곳에 도착한 왕건이 한숨을 돌리고 찌푸린 얼굴을 활짝 폈다는 해안(解顔), 반야에 달이 중천에 떠서 왕건의 탈출로를 비췄다는 반야월(半夜月), 이 지역에 도달하여 비로소 왕건이 안심했다는 안심(安心), 왕건이 병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고 태만함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는 무태(無怠) 등이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다.
가곡은 한국 3대 성악곡 중의 하나로, 대중적인 판소리와 범패(梵唄)에 비해 전문가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예술적 가치가 높은 음악이다. 가곡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에 곡을 붙여서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며, ‘삭대엽(數大葉)’ 또는 ‘노래’라고도 한다. 가곡의 원형은 만대엽 · 중대엽 · 삭대엽이다. 그중에서 느린 곡인 만대엽은 조선 영조대 이전에 없어졌고, 중간 빠르기의 중대엽도 조선 후기에는 부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가곡은 빠른 곡인 삭대엽에서 발생한 것으로, 가락적으로 관계가 있는 여러 곡들의 노래모음이다.
가곡은 시조 한 편을 5장 형식으로 구분하여 부르는데, 전주곡인 대여음과 간주곡인 중여음을 넣어서 대여음, 1장, 2장, 3장, 중여음, 4장, 5장 순으로 반복하며, 매우 조직적이고 짜임새가 있다. 장단을 보면 느린 속도의 16박자와 ‘편장단’인 빠른 속도의 10박자가 있다. 연주는 거문고, 가야금, 해금, 대금, 단소, 장구 등으로 이루어지며, 현재 동구 신암3동 가곡(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1989년 지정)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광역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공산농요(公山農謠)는 동구 공산동 일대에서 전승되는 노동요로, 소박한 농민들의 슬픔과 기쁨이 어린 민요이다. 공산농요는 전체적으로는 선소리꾼이 노래를 메기면 농군들이 받아서 뒷소리를 함께 부르는 문답창 형식이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농요는 어사용, 가래질 소리, 망깨노래, 도리깨 타작 노래, 모찌기 노래, 논매기 노래, 논매기 끝날 무렵의 전례, 깨자리타기(괭이자루타기)의 칭칭이이다.
면적은 182.17㎢로 대구광역시 전체 면적 883.48㎢의 20.6%를 차지하여 달성군(426.67㎢) 다음으로 넓다. 지목별 토지이용 현황은 임야가 전체 면적의 60.7%를 차지하며, 논 16.1㎢(8.8%), 밭 11.7㎢(6.4%), 대지 11.7㎢(6.4%), 하천 7.14㎢(3.9%), 도로 8.1㎢(4.4%)로 나타난다.
동구 지역은 도시와 농촌의 복합적인 산업분포를 이루고 있다. 금호강 남측의 기존 시가지인 신암동, 신천동, 효목동 일대는 동대구역을 중심으로 고속버스터미널과 동부정류장 등이 입지하고 있어, 대구의 관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동대구로를 따라 동대구벤처센터, 대구테크노파크 등 입지하여 동대구 벤처기업 촉진 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고속버스터미널과 동부정류장은 2016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로 통합 이전되었다.
반면에 금호강 북쪽 지역은 도시화 정도가 낮은 농촌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 신서 · 율하 · 연경지구 등의 택지 개발사업, 대구선 이전 후 적지 개발, 동구 안심 종합개발 계획, 봉무동 고급주거단지 조성 등의 각종 신개발지 조성에 따라 인구증가 추세를 띠고 있다.
동구의 농업은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동구 평광마을의 140여 호 농가가 사과농사를 전업으로 연간 1650톤의 사과를 생산하고 있으며, 둔산동은 복숭아, 공산 지역은 방울토마토, 안심 지역은 완숙토마토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팔공산 동남향 순환도로 주변 경사지에는 1975년 전국 최대 규모의 대단위 관광농원 겸 포도단지가 조성되어 현재 이 일대 340호의 농가가 연간 3000톤의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반야월을 비롯한 금호강 주변 일대에서 재배되고 있는 연근의 재배면적은 0.95㎢로, 전국 생산 면적의 50%를 차지하며 연간 3000톤을 생산, 39억 원 정도의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밤호박은 1998년부터 안심 지역에 수출단지를 조성하여 현재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또한 해발 600m 정도의 7부 능선 이상에만 자생하는 팔공산 자연송이는 보통 연간 약 4∼5톤 정도 생산되어 주로 일본으로 수출하였으나, 최근에는 국내소비가 많은 편이다.
이밖에 들깻잎, 버찌, 청정 미나리, 팔공산 잎채소, 취나물, 느타리버섯, 유기농 채소, 팔공산 토종돼지 등의 특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한편 2015년 현재 산업구조를 보면, 3차 산업 종사자가 전체 사업체 종사자의 92.6%를 차지하는 반면에 2차 산업은 7.4%에 지나지 않는다. 3차 산업 중에서도 도매 및 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 등 소비자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매우 크다.
상업시설로는 할인점과 쇼핑센터가 각각 1개, 시장 12개가 있다. 제조업은 미등록 업체를 제외한 제조업체 중에서 기계 및 섬유업체가 대부분이고, 그 규모도 50명 미만의 영세업체가 약 98%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집단 산업시설로는 불로화훼단지와 불로목공예촌이 입지하고 있다. 불로화훼단지는 동화사로 가는 팔공로의 불로동과 봉무동 구간 양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100여 곳 이상의 농원이 집적하고 있다. 전체 20㏊의 면적에 다양한 수종과 화훼류, 화분 등 화훼와 관련한 물건을 판매하는 일종의 도소매시장이다.
그리고 불로목공예촌은 불로동, 봉무동 일대 70여 개의 목공예업소 집단 목공예단지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목공예품은 전국의 70∼80%를 차지할 뿐 아니라, 외국에 수출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주된 제품은 향나무, 물푸레나무, 오동나무, 박달나무, 대추목, 느티나무, 육송 등의 원목을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관광용 목공예품을 비롯한 농악기, 응접세트, 장롱, 불교용품 등이다.
동구의 지역산업 구조는 전체적으로 낙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동구 지역은 개발제한구역, 팔공산공원 보호구역, 상수원 보호구역 그리고 군사시설 보호구역 등 각종 개발규제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개발제한구역은 총 102.48㎢로서 동구 전체 면적의 56.2%를 차지하여, 도시산업 발전 저해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신서동 일대가 혁신도시 입지로 선정됨에 따라, 혁신도시 조성에 따른 파급효과로 인해 도시발전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통은 대구국제공항, 동대구역, 고속버스터미널, 동부정류장, 경부 · 대구-포항 · 대구-김해 간 고속도로의 나들목이 소재하는 교통 요충지로서 대구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 1호선이 통과하여 지역 간 교통과 도시 내 교통의 결절점이며, 역세권 개발의 효과도 기대된다.
지저동에 입지하고 있는 대구공항은 1961년 4월 1일 부산비행장 대구사무소로 설치된 후, 1990년 6월 21일 한국공항공단 대구지사가 설립되었으며, 2002년 5월 13일 대구국제공항 개항지로 지정받았다. 항공기 운항횟수는 연간 14만 회 정도이다. 국제선은 2015년 현재 중국의 북경, 상해, 일본의 오사카 노선이 운항되고, 국내선은 인천, 제주 등과 연결된다. 주요 시설로는 여객청사와 주차장을 갖추고 있고, 탑승교 3기가 설치되어있다. 또한 국내공항 최초로 공항 호텔이 있어 숙박, 회의장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제공함으로써 Complex Port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한편 동대구역은 1969년 6월 10일 선상 역사로 신축된 이래, 2004년 KTX 개통으로 역사 증축이 완공되었다. 총 부지 12만 1962평, 건물 7811평으로 영남 지역 교통 결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하철 동대구역, 고속버스터미널과 동부정류장이 근접해있기 때문에 시내 각 지역과의 연계도 편리하다.
관광은 팔공산도립공원으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공산도립공원은 대구광역시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넓은 관할구역에, 유명 사찰, 유적지, 유원지, 공원 등 풍부한 관광자원이 위치할 뿐 아니라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팔공산은 대구의 진산(鎭山)으로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의 오악(五岳) 중 중악(中岳)이며, 불교의 성지로 많은 불교 유적이 산재한 산이다. 팔공산은 해발 1192m의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봉과 서봉을 거느리고 동서로 힘차게 뻗어 있다. 팔공산에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통일대불과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동화사,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했다는 부인사, 그밖에 파계사, 송림사, 은해사, 북지장사 등 대가람과 50여 개의 암자가 산재해 있다. 또한 관봉의 석조여래좌상(갓바위)을 비롯하여 6개의 약사불과 석조물 등 수많은 불상, 부도, 탑 등 불교 유산이 골짜기와 봉우리마다 산재해 있는 우리나라 제일의 불교 성지이며, 약사여래신앙의 총본산이다.
198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과 더불어 동화, 파계, 갓바위 3개 지구를 국민관광지로 지정하여 본격 개발하고 있으며, 현재 콘드라 리프트카, 골프장, 관광호텔, 학생야영장 등 각종 위락시설의 설치로 시민은 물론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불로동 고분군(사적, 1978년 지정)은 대개 삼국시대인 4∼5세기경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고분은 직경 15∼20m, 높이 4m 내외의 봉분으로,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 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군은 볼로동 및 봉무동, 도동의 구릉에 분포하고 있으며, 현재 211기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군 중 가장 외형적인 형태가 잘 갖추어져 있어, 유적으로서 의미와 가치가 크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 장군이 순절한 곳으로, 태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전사한 자리인 이곳에 지묘사(智妙寺)라는 절을 세워 명복을 빌게 하였다. 그 후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폐사되었으나, 1607년(선조 40)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表忠祠), 표충단(表忠壇), 충렬비(忠烈碑)를 건립하여 공의 혼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였다. 현재도 표충사 앞쪽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고개를 왕건의 정예군이 크게 패하였던 고개라 하여 ‘파군(破軍)재’라 부르고 있고, 파군재 남쪽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하여 잠시 앉았다고 해서 ‘독좌암(獨坐岩)’이라고 하며, 표충사의 뒷산을 ‘왕산(王山)’이라 부르고 있다.
옻골은 경주최씨 집성촌으로, 행정동 명칭은 둔산동(屯山洞)이다. 둔산동은 조선시대 군영지가 소재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유명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명당골’이라고도 한다. 400년 전 옻나무가 많은 골짜기라 하여 ‘옻걸’로 불리다가 발음이 비슷한 ‘옻골’로 부르게 되었으며, 일명 ‘칠계동’이라고도 하였다.
최씨 종가는 조선시대의 학자 최동집이 1616년(광해군 8) 무렵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집으로, 살림채는 1694년(숙종 20)에 지은 안채와 1905년(고종 42)에 중건한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박공(牔栱) 지붕 집이다. 이는 대구 지역의 조선시대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안채, 사랑채, 재실, 가묘 등이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시대 양반 주택과 그 생활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달성 측백수림은 높이 100m 안팎, 너비 600m 안팎의 절벽에, 높이 5∼7m의 측백나무 1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측백나무는 원래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여겨져왔으나, 이곳을 비롯해 경상북도 영양, 충청북도 단양 등 여러 곳에서 자생하고 있음이 밝혀져, 한국을 원산지로 인정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군락지가 끝나는 동쪽 끝 부분에 동화사(桐華寺)의 말사(末寺)인 관음사(觀音寺)가 위치하고 있다. 이 인근에는 임진왜란 당시 대구 지방 의병과 민중들이 모여 항쟁했던 용암산성이 있다. 이외에도 동신교와 수성교의 중간지점 신천동 신천 강바닥에서 발견된 신천 공룡발자국 화석 산출지, 1982년 마로니에 550그루를 가로수로 심어 조성한 불로봉무동 팔공로 마로니에거리도 대구의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2015년 현재 동구의 공원 현황을 살펴보면, 자연공원 1개, 근린공원 30개, 도시자연공원 1개, 어린이공원 49개, 유원지 1개가 있다. 금호강 자연생태공원은 화랑교에서 금호강 상류 쪽 1.4km 구간에 조성된 공원으로, 강변의 잔디밭 사이에 느티나무와 참나리, 원추리, 꽃창포 등 야생초가 자라고 있으며, 산책로, 농구장, 벤치, 가로등, 파고라, 조형물 등의 쉼터와 운동시설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다. 특히 금호강 자연생태공원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도 수변공원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자연친화적 생태공원이다.
봉무공원은 1992년에 종합레포츠공원으로, 족구, 배구, 테니스, 사이클 등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저수지(단산지) 주위 산책로에는 벤치와 함께 우리 꽃 화단을 조성하여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공원이다. 또한 산악자전거 코스를 개발하여 산악자전거 대회를 열고 있으며, 동구의 각종 축제도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망우당공원은 대구의 동쪽 관문에 자리 잡은 공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장군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지어졌다. 공원 내에 곽재우 장군의 동상이 있으며, 망우당 기념관에는 곽재우 장군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공원 내에는 대구 독립운동의 대표적 유적지인 조양회관(朝陽會館)이 있다.
금호강변에 위치한 효목동 동촌유원지는 울창한 나무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룬 유원지로 풀장, 보트놀이, 어린이 놀이터 및 상가 약 60여 개가 자리 잡고 있는 대구 시민의 오랜 휴식처이다.
국립신암선열공원은 대명동 시립공원 묘지에 있던 선열들의 묘를 1955년 현재의 위치인 신암5동 산 27번지로 이전하고, 1987년 묘역 성역화 사업을 통해 조성된 공원이다. 44기의 애국지사 묘가 있으며, 면적은 1만 1132평, 건물로는 단충각(丹忠閣)이 있다. 2018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그 외에도 동구에는 동부도서관, 동부여성문화회관, 테니스장, 청소년 야구장 등을 갖춘 신암공원과 신기동 안심공원 등이 있다.
한편, 신암동 평화시장의 닭똥집 골목은 대구 지역에서 유명한 먹거리 관광명소이다. 1983년 4개 업소로 시작되어 현재는 50여 개의 업소가 집적하여있는 동구의 명물거리이다.
문화행사로는 매년 6월 갓바위 집단시설지구에서 개최되는 갓바위축제와 팔공단오축제, 그리고 팔공축제가 있다. 팔공축제는 구민화합축제로서 팔공산의 참모습 홍보와 주민화합을 위해 1987년부터 매년 10월 중순에 4일간 각 지역별로 적절한 행사종목을 선정해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