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구 ()

해운대구(부산광역시)
해운대구(부산광역시)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부산광역시 동부에 위치한 구.
정의
부산광역시 동부에 위치한 구.
개관

북동쪽으로 기장군, 서쪽으로 수영구와 연제구, 북쪽으로 금정구와 접하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수영구 및 동남해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9°06′∼129°12′, 북위 35°08′∼35°14′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51.47㎢, 인구는 42만 281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8개 행정동(8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다.

자연환경

해운대의 주산인 장산(萇山)은 해발 634m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금련산맥 중 가장 높은 산으로 산 전체의 모습은 원추형이며, 산정은 예리하고 사면은 가파르다. 산정 아래에는 제4기 빙하시대에 형성된 애추(涯錐)가 발달해 있는데 좌동 폭포사 뒤, 재송동, 반여 2, 3동 뒤 산기슭에 대규모로 표출되어 나타나 있다. 장산의 최정상에는 두개의 봉우리가 30m 남짓한 거리에서 마주보며 솟아있다. 최고봉인 제1봉은 해발 634m로 1992년 부산이라고 표기한 삼각점이 정상 중심부에 설치되어 있으며 그 보다 조금 낮은 제2봉은 산 정상의 지면에서 7m 정도 더 솟아있다. 이 두 봉우리를 통해 장산이 화산활동 후 함몰되었다가 다시 솟아 올라와 굳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2봉의 산단은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둘레가 모두 절벽이나 사람이 쉽게 오를 수 있는 구조로 개조되어 있어 옛날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장산의 지명은 동래지방이 신라에 정복되기 이전 이곳 주위에 장산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던데서 유래되었다.

반송동에 소재한 운봉산(雲峰山)은 해발 253m의 비교적 낮은 산으로 금련산맥 중 한 봉우리이며 금정구와 양산군 철마면을 접하고 있다. 운봉이란 명칭은 신비스런 영산이란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지며 일명 수제산이라고도 불린다.

중동에 소재한 와우산(臥牛山)은 해발 138m의 낮은 산으로 대한팔경의 하나인 해운대 저녁달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산 이름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하여 청사포 사람들이 와우산이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우동에 소재한 천비조산(千飛鳥山)은 해발 148m의 산으로 최근에는 간비오산(干飛烏山)을 장산의 일부로 보아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는다. 간비오산은 이두식 표기인 ‘큰 나루가 있는 곳의 산’이란 뜻이며, 봉수대가 있다.

석대동 서남쪽에 위치한 석대산(石坮山)은 해발 79.4m로 산모양이 마치 ‘말이 달리는 형상’이라 하여 일명 구마산이라고 표기하는 이도 있다.

해운대구를 지나는 가장 긴 하천인 수영강(水營江)은 총연장은 20㎞로 양산군 내원사 동남쪽의 원효산에서 발원해 법기수원지와 회동수원지를 거쳐 석대동, 반여1동, 재송동을 지나고, 양산군 철마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반송동과 석대동, 반여1동을 지나 재송동에 이르러 금정산에서 발원하는 온천천과 합류해 수영만으로 유입된다.

강 상류에는 회동수원지가 있고 하류에는 종합하수처리장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시대 하구부근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좌수영)이 설치되면서 수영천 또는 수영강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송정동과 양산군 기장읍의 경계를 이루는 송정천(松亭川)은 총 연장 4㎞ 정도로 급류성 하천으로 토사의 운반물질이 많으며 이 하천의 퇴적물이 송정해수욕장의 사빈을 구성한다.

총 연장 10㎞ 정도인 춘천천(春川川)은 장산에서 발원하여 장산폭포를 지나 좌동교를 통과한다. 좌동과 송정의 경계봉인 부흥봉 골짜기에서 발원한 소지류와 중동 지역에서 합류해 해운대 해수욕장 북서부를 흘러 동백섬 서편 수영만으로 유입된다. 춘천천의 상류에는 비교적 넓은 선상지가 발달하였고, 하류에는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일명 해운대천이라으로도 불린다

장산 구봉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우동천(佑洞川)은 장수암을 거쳐 흘러내린 지류와 장산아래 성불사 부흥봉 계곡에서 발원한 지류가 우2동에서 합류해 우동교와 올림픽공원을 지나 수영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일명 ‘희변내’라고도 한다.

해운대구의 해안은 해안선이 복잡하며 암석해안과 사질해안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등 그 형태와 성질이 다양하다.

구성 물질이 기반암반으로 된 암석해안은 주로 외해에 면한 소반도(小半島), 두각지 또는 도서의 선단에 잘 나타나며 와우산 하단인 고두말과 동백섬 해안이 이에 속한다. 모래로 구성된 대표적인 사질해안으로는 송정만과 수영만이 있다. 송정만은 폭이 약 8㎞로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동암각에서 해운대구 와우산의 말단인 고두말에 이르는 만이다. 만구가 넓고 1㎞ 정도의 긴 사빈으로 되어있는 내만은 송정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수영강 하구에 열려있는 수영만은 고두말과 우암반도 사이의 만으로 만구의 폭은 약 5.8㎞이고 내만은 4개의 작은 만입으로 되어있다. 고두말과 동백섬 사이의 만입은 약 1㎞에 이르는 긴 사빈으로 해운대 해수욕장이 있으며, 사빈의 서쪽에는 육계도인 동백섬이 자리 잡고 있다.

기후는 바다에 연해있어 온대 해양성기후를 보이고 있으며 연평균기온 15.3℃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온난한 지역 중에 하나이다. 1월 평균기온은 5.2℃이며 8월 평균기온은 26.7℃로 연교차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적다. 연평균 강수량은 1,276.5㎜이다.

역사

1992년 좌동과 우동에서 발굴된 긁개와 홈날, 돌날몸돌, 돌말, 찌르개와 같은 유적을 통해 이 지역에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주거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장산국으로 기록에 처음 나타나며, 이후 거칠산국이 되었다가 6세기 초 신라에 병합되어 거칠산군이 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해운대구는 문화적, 정치적으로 가야세력권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팽창 일로를 걷던 신라의 정치세력과 접촉하고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거칠산군은 양주(良州)의 12군 중 하나인 동래군이 되었으며 그 속현으로 대증현이 동평현(東平縣: 현재 당감동 지역), 갑화량곡현이 기장현(機張縣)으로 개칭되었던 것으로 보아 해운대구 지역은 동래군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해운대구는 예부터 자연의 경치가 뛰어나며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신라 때부터 왕,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해운대(海雲臺)라는 지명 또한 신라 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자(字) 해운(海雲)에서 따온 것이다. 최치원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해운대에 들렀다가 달맞이 일대의 절경에 심취되어 동백섬 남쪽 암벽에 해운대라는 세 글자를 음각하였는데, 이것이 지명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 초 이곳은 후백제와 고려가 세력을 다투던 곳으로 해운대구는 후백제의 지배를 받았다. 1018년(현종 9)에는 전국이 4도호부, 8목, 56지주군, 28진, 20현으로 개편되면서 동래군은 동래현으로 격하되어 울주군의 속현이 되었고, 동래군의 속현이었던 동평현은 양산군의 속현이 되었다. 이때 해운대 지역은 동래현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인 1405년(태종 5)에는 양산군의 속현이었던 동평현을 동래군의 속현으로 변경되었으며 그 후 속현제도가 없어짐에 따라 동래현에 통합되었다. 대일 방어상의 중요 요충지였던 이 지역은 1547년(명종 2)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동평현은 동래도호부의 동평면으로 편입되었다. 1592년(선조 25)에는 임진왜란 패전을 이유로 동래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599년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어 조선 말까지 계속되었다.

해운대 지역은 동래부 동면의 반여리, 재송리, 운대리, 우동리, 중동, 좌동, 지경리, 석대리 등 여러 동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1691년에 동면을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하여 서동리, 신천리, 오륜리, 석대리, 반송리. 반여리. 무정리 등은 상단에, 재송리, 우동리, 중동리, 해동리 등이 하단에 속하게 되었다. 동면은 1895년 「칙령 제36호」가 발효되어 지방이 7부로 나누어지면서 동래부가 되었고, 1899년 편찬된 『동래부읍지』에 동래부 관할의 면으로 동면이 나타나지만 19세기 이후 『동하면고문서(東下面古問書)』에는 모두 동하면으로 표기되고 있다. 따라서 동면 하단과 동면상단을 각각 동래부의 동하면, 동상면으로 분면하여 관할한 것으로 추측된다.

1910년 조선총독부 관제시행으로 종전의 부군의 명칭과 관할구역이 정해지면서 동래부가 부산부로 바뀌었고 1914년 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오늘날 해운대 지역인 동하면은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이 당시 해운대 지역은 시가지도 조성되지 않은 미개발 지역이었으나 해운대 온천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제강점 말기인 1942년에는 부산시 수영출장소에 편입되었으며 1953년에 수영출장소에서 분리되어 우동, 중동, 좌동을 관할하는 해운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57년에는 구제로 변경되면서 동래구 해운대 출장소로 개편되었다.

이후 1960년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가 편입되었고, 1976년 시 직할 출장소로 바뀌었으며 1980년 동래구와 분구되면서 해운대구가 신설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해운대구는 관광지로서의 명성 뿐 아니라 2005 APEC 정상회의 개최 및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국내유일의 요트경기장 등을 통해 컨벤션, 영상, 해양레저의 메카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해운대구는 해운대 해수욕장의 해안선을 끼고 있는 우동·중동 지역과 구의 제일 동단에 위치하며 송정해수욕장이 있는 송정동, 신시가지 조성계획 따라 아파트가 밀집된 좌동 지역,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형성된 반여·반송 지역, 1988년 9월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과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이 들어서면서 택지개발과 함께 주거지역으로 자리 잡아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재송 지역으로 대별되어진다.

법정동으로는 중(中)·우(佑)·좌(佐)·송정(松亭)·반여(盤如)·석대(石坮)·반송(盤松)·재송(栽松) 등 8개 동이 있으며, 행정동은 우(佑)1∼2동, 중(中)1∼2동, 좌(佐)1∼4동, 송정동(松亭洞), 반여(盤如)1∼4동, 반송(盤松)1∼3동, 재송(栽松)1∼2동 등 18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물·유적

해운대구에는 역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유물과 유적이 산재하고 있다. 1992년 신시가지 조성지역에서 발굴된 중동, 좌동 구석기 유적과 좌동 고분군은 부산의 역사를 지금까지의 신석기 시대에서 구석기 시대로 끌어올리게 하였다. 중동과 좌동 구석기 유적은 직선거리로 약 300m 남짓한 근거리에 인접하고 있으며, 해발 40∼50m높이의 구릉에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1만 5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후기 구석기 유물들이 약 300여 점 발굴되었는데, 좌동의 경우 긁개와 홈날 그리고 석재로 사용된 몸돌들이, 그리고 중동의 경우는 후기구석기 가운데서도 말기 양상으로 볼 수 있는 돌날몸돌, 돌날, 소형의 찌르개가 발굴되었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문서로는 조선시대인 1396년(태조 5) 3월 7일 왕이 조숭에게 가정대부 상의중추원사 도평의사사 등의 관직을 제수한 사령장인 조숭고신왕지(보물, 1988년 지정)가 있다. 양질의 장지에 6행의 초서체로 쓰여졌고, 연월위에 조선왕보(朝鮮王寶)라는 옥새가 찍혀 있다. 조서경 무과홍패(보물, 1988년 지정)는 1435년(세종 17) 4월 20일 조서경의 무과급제를 증명하는 홍패왕지이다. 홍패왕지는 붉은 종이에 먹으로 급제한 사람의 성명, 성적 등의 등급을 기입하였으며 이 홍패왕지는 6행의 초서체로 쓰여 있고 선덕 10년의 연호 뒤에 ‘국왕신보’라는 새보가 찍혀 있다. 국가지정보물 2종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좌동 경로당에서 발견된 동래부동하면고문서(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93년 지정)는 조선 후기 사회·행정·문화적 배경과 전통을 알 수 있는 면단위 고문서로 모두 30책 470면으로 되어있으며 1993년 12월 3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일본과의 전쟁과 관련한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반송2동에 위치한 삼절사(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는 임진왜란 초기 왜군에 맞서 장렬히 순절한 남원양씨 일문 3공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839년(헌종 5) 동래부 사림의 건의로 건립되었다. 경술국치로 각종 기문, 현판 등은 압수·오손되었으나, 세한당 현판은 보존 되었다. 기존의 건물을 헐고 중건에 착수하여 1990년 6월 지금의 모습으로 준공(사우 3간, 세한당 5간, 모현관 2층 상하 8간, 반송제 4간, 상절문 등)되었다.

우1동에 위치한 선황사는 임난공신 김희수공의 묘와 사당이 있는 곳이다. 김희수공은 임진왜란(1592년) 당시 왜적으로부터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공의 충절을 추모하여 관직을 추서하고, 동래구 소재 충렬사에 여러 공신과 함께 배향했다. 공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94년 4월 묘역을 정화하고 신위를 모신 선황사를 건립했다.

반송동에 위치한 운송제는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순절한 문덕겸공과 문세휘공을 추모하는 제실이며 석대동의 기적비단소는 임난창의 공신 구영치공의 업적을 기린 비와 제향을 모시는 단소이다.

부산에서는 황령산 봉수대와 함께 가장 오래된 봉수대인 간비오산 봉수대는 설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말부터 갑오개혁 시기까지 약 700여 년 간 해운포 일대에 침입한 왜적을 감시하고, 서쪽의 황령산 봉수대와 북쪽의 기장 남산 봉수대 사이의 연락을 수행하였다.

한편 최치원과 관련된 유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동백섬(부산광역시 기념물, 1999년 지정)과 해운대석각(부산광역시 기념물, 1999년 지정)이 있으며, 청사포 망부송과 5효자1효부정력각도 귀중한 유적으로 꼽힌다.

근대 문화유적으로는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송정역이 있다. 이곳은 1940년대의 전형적인 역사건축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비교적 원래의 모습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 이곳의 철재창고 역시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아르누보양식을 띠고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교육·문화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33개교, 중학교 19개교, 고등학교 14개교가 있으며, 동부산대학교, 영산대학교 해운대캠퍼스가 위치해 있다. 영산대학교 해운대캠퍼스는 2002년 성심외국어대학과 통합 후 문화·관광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특성화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반송동에 소재한 동부산대학교는 1978년 동래여자전문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하여 1998년 동부산대학으로 개명되었고, 2012년 동부산대학교로 개명되었다.

해운대구 내에는 여러 전시관과 도서관 등이 위치해 있다. 우2동에 소재한 시립미술관은 다양한 분야의 현대미술 및 부산과 영남권 미술을 중점 수용하는 종합미술공간으로 1998년 개관하였다. 총 16개의 전시실을 비롯하여 도서관과 옥상 정원 등의 휴식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격년으로 10∼11월에 국내외 예술인이 참가하는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된다. 해운대 달맞이 동산에 있는 동백아트센타는 1992년 4월에 개관하였으며, 부산지역 작가전을 비롯하여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연중 기획전시 되고 있다.

우1동에 위치한 복합영상 문화공간인 시네마테크는 1999년에 개관한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야외상영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 외 예술영화의 지속적인 상영, 독립영화의 지원, 교양·교육 프로그램의 활성화, 영화관련 자료의 체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우1동에는 부산광역시립 해운대도서관이 있으며 중2동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도서관인 추리문학관이 있다.

민속

주민들이 행하고 있는 민간의례에는 시주단지 모시기, 영동할미제, 성주모시기, 세존모시기, 조왕모시기와 공동제로는 풍어제, 당산제가 있다. 개인제는 현재 거의 소실되어 가는 상태이지만, 신주단지 모시기와 영동할미제는 몇 몇 가정에서 신앙되고 있다.

신주단지 모시기는 가족들의 건강과 집안에 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시존단지, 세존단지, 성주단지, 조상단지 라고도 불린다. 신주단지는 안방과 대청 등 신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의 가장 윗자리에 창호지로 덮고 무명실로 봉해둔 쌀 단지를 두는 것으로 성주에 대한 제의와 쌀갈이가 명절과 정월보름에 행해진다.

영동할미제는 이월 초하루에서 스무날 사이 첫닭이 울 때 정화수를 떠서 장독대나 부엌에 놓고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영동할미는 제석할매, 영동할마씨·영동할망네, 이월 할망네 등으로 불린다. 장독대에서 제를 지낼 때, 장독대 앞에 짚을 놓고 그 위에 밥, 나물, 고기 떡 등으로 제물을 진설하는데 집안에 재수 있고 농사 잘되기를 기원하고 끝난 후 소지종이를 올리고 음식은 짚에 싸서 단지 안에 두었다가 며칠 뒤에 먹는다. 영동할미는 시기심이 많아 딸을 데리고 올 땐 바람을 불게하고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땐 비를 내리게 한다는 설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별신굿이라고 불리는 청사포 풍어제는 과거 4년마다 한번 씩 치루어 졌으나 1996년 이후 맥이 끊겼다가 2008년 12년 만에 다시 열렸다. 마을의 안녕과 화합, 풍어를 기원하고 바다에서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거행되는 것으로 남자들이 주체하며 무당이 거행한다. 풍어제는 성씨, 본관의 시조신에 대한 가망굿을 시작으로, 생산을 관장하는 신에 대한 세존굿, 용왕신에 대한 용왕굿, 재앙을 물리치고 행운을 비는 성주굿 등이 펼쳐진다.

당산제는 마을의 조상신·수호신에게 마을사람들의 연중무병과 평온무사를 비는 제사로 송정 망제 당산, 구덕포 당산, 청사포 당산, 신기 당산 할매집, 새실 당산, 장산 당산, 우동 제석당, 중동 당산, 운촌 당산, 재송 당산, 무정리 당산 등 여러 자연 마을마다 당산이 있었다.

설화·민요

다양한 설화가 전해오는데 범바위전설, 석대동의 느티나무, 개좌골에 얽힌 전설, 도둑골 전설, 무지개산의 연못 등 지명이나 자연지물에 관한 전설이 있으며,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산고동을 구한 효자 이야기, 노인이 쓴 갓을 쓰고 소가 된 사람이 노인에게 다시 갓을 씌워 판 이야기, 꾀로 어머니 원수를 갚은 아들과 같은 민담이 등이 전해지고 있다.

모찌기, 모심기 노래는 재송동 토속민이 부르던 농요로 남자가 못줄을 잡고 부녀자가 모를 심었으며, 부녀자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모내기를 하면서 절반은 앞의 한 구절을, 나머지 반은 뒷 구절을 장단 맞추어 불렀던 노래이다. 송정의 노래는 다리돌, 일본송, 간진암, 암덕봉 등 송정의 명승지를 소개 한 뒤 ‘에헤야 좋구나 좋다.’ ‘에헤야 좋구나 좋아.’ ‘명승의 송정이 자랑이로구나’ 등의 후렴구를 붙여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했다.

산업·교통

농업은 반송동·송정동 등 변두리의 채소원예와 석대동, 반여동의 화훼생산이 중심이다. 농지는 대부분 송정동, 반송동, 반여동의 개발제한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215호 농가만이 관내 농경지를 경작하고 있다.(2008년 현재)

어업은 수영만에서 송정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12㎞의 해안선을 따라 이루어지며 대부분이 해조류 양식어업을 통해 미역을 생산하고 있다. 해안환경 악화 및 수산자원 감소로 어선어업은 부진한 상황이며, 2008년 현재 어촌계 4개소, 어항 5개소, 어선 259척, 양식어장 10개소의 어업 기반시설을 갖고 있다.

섬유, 신발, 식품과 같은 전통제조업체는 해운대구 전지역의 제한정비지역 지정으로 다른 공업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 반면 1997년 일반산업단지로 지정된 센텀시티일반산업단지와 2008년 도시첨단산업단지로 조성된 석대2도시첨단산업단지는 도심형 첨단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지식서비스·정보통신·전기전자·영상, 도시형 저공해산업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해운대의 핵심 산업으로 특히 관광산업은 1994년 8월 31일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래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교통은 1920년 동래에서 해운대 간의 도로가 개통되면서 도로 건설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하였고, 1924년에는 해운대에서 부산진 간 도로가 완공되었다. 1925년에는 해운대와 경남 기장 간에 정기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구내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되었다. 1992년 신시가지 우회도로가 착공되었고, 2003년 1월 광안대로가 개통됨에 따라 동부산권의 교통요충지로서의 교통 기반시설이 대폭 확충되었다.

신시가지 우회도로 건설과 함께, 1996년에는 장산 터널과 송정터널이 개통되었다. 우동에 소재한 장산터널은 1, 2터널로 나뉘며 우동과 신시가지인 좌동을 연결하여 교통을 원활하게 하며 송정터널은 터널 길이 780m의 왕복 6차선의 쌍굴로 좌동과 송정동을 연결하여 해운대에서 송정까지의 통행시간을 단축시켰다.

2002년 8월 해운대구를 지나는 지하철2호선이 개통되었고, 지하철3호선 2단계(반송선) 건설사업이 2003년 12월 착공되어 2010년 완공되었다. 부산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포항시를 잇는 동해선이 2016년 개통되어, 해운대구를 지나고 있다.

관광

해안을 끼고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며 1994년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광지인 해운대 해수욕장을 비롯한 해운대 명소(12경)들에는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동, 좌동, 우동에 걸쳐있는 해운대 해수욕장은 넓은 백사장과 아름다운 해안선으로 유명하다. 백사장 길이 1.8㎞, 너비 50m 등 총 면적이 5만 8400㎥에 이르며 평균 1m의 얕은 수심과 잔잔한 물결로 해수욕장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자연 경관이 수려할 뿐 아니라 해안선 주변으로 고급 호텔들과 크고 작은 빌딩들이 위치하고 있어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의 달맞이 축제를 비롯하여 북극곰수영대회, 모래 작품전, 부산 바다 축제 등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해수욕장 주변으로 동백섬, 오륙도, 아쿠아리움, 요트경기장, 벡스코, 달맞이고개, 드라이브코스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나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하는 와우산 중턱에는 15곡도(曲道)라고도 불리는 달맞이길이 있다. 길가로 벚나무와 송림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으며 총 8㎞에 달하는 드라이브 코스를 형성하고 있다. 길목 중간부분(정상)에는 달맞이동산이 조성되어 있는데 특히 해월정(海月亭)에서 바라보는 월출(정월대보름달)은 대한팔경 중 하나이다. 해운대에서 달맞이길을 넘어가면 자연절경이 빼어난 송정해수욕장에 이른다.

송정동에 위치한 송정 해수욕장은 1965년 7월 9일 개설되었으며 백사장 길이는 1.2㎞, 폭 30∼90m, 면적은 7만 2000㎡에 이른다. 양질의 모래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여 수영하기에 알맞다. 인근의 신도시 입주가 완료되고 주변교통망이 완공됨에 따라 이용객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또한 해운대 해수욕장 남쪽 끝에 있는 동백섬은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하여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도시민과 관광객들의 산책로로 알려진 이곳에는 2005 APEC정상 회의장소인 누리마루하우스가 건립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해운대 12경중 하나인 해운대 온천은 신라 51대 왕인 진성여왕이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았는데, 이곳에서 온천욕을 하고 씻은 듯이 나았다고 전해지며 구남온천으로도 불렸다. 알칼리성 단순식염 온천으로 라듐분이 함유되어 피부병, 고혈압, 류마티스, 빈혈, 소화기질환 등 각종 성인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중동의 해운대구청 앞쪽으로 온천 대중탕들이 밀집해 있다.

다양한 건축물 또한 해운대의 명소로 유명한데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의 센텀시티를 연결하는 광안대교는 총연장 7.42㎞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해상교량이다. 교량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상층부에서 바라보는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요일별, 계절별로 다양한 경관조명으로 인해 부산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중동에 소재한 부산 아쿠아리움은 최첨단 ‘해저테마수족관’으로 단일 시설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연면적 4000평에 이른다. 3000여 톤의 메인 수족관과 테마별로 특성을 살린 40개의 수족관, 80m 아크릴터널, 바닷속 생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터치풀 등이 있다.

또한 우동의 BEXCO(부산전시컨벤션센터)도 연면적 9만 2761m² 지하 1층, 지상 7층의 규모의 해운대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본선 조추첨 행사, 2003 ICCA연차총회, 2004 ITU 텔레콤아시아, 2005 APEC 정상회의 등 세계적인 전시,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해운대구에서 열리는 예술·축제 행사로는 달맞이 온천축제, 신년 해맞이 축제, 달맞이언덕 철학축제, 해운대모래축제 등이 있다.

해운대 저녁달을 관광객에게 널리 알리고 잊혀져가는 세시 풍속놀이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시작된 달맞이 온천축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리며, 윷놀이, 널뛰기, 농악놀이 및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월영기원제, 강강수월래 등 민속 놀이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새해 첫날을 맞이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운대 해수욕장, 달맞이 해월정, 송정 해수욕장 등에서는 신년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2008년 11회째를 맞는 달맞이 언덕철학축제는 달맞이언덕을 축제의 공간으로 활용하여 연극, 현대무용, 달빛음악회, 철학 강연, 문화(벼룩)장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초여름인 6월에 개최되는 해운대 모래축제는 해운대를 상징하는 모래와 해양을 소재로 모래위에서 펼쳐지는 이색스포츠인 모래마라톤, 모래골프, 비치 사커, 비치발리볼 등과 모래 속 보물찾기, 모래그림그리기, 모래시계만 들기와 같은 모래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윈드서핑·서핑보드 등의 해양레포츠 체험교실이 열린다

여러 공원과 스포츠시설이 있다. 우동의 올림픽 공원은 제24회 서울올림픽 요트경기를 수영만에서 개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야외조각공원, 자전거 놀이마당, 잔디광장, 자동차야외극장(시네파크), 산책로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하기 위하여 수영강변을 따라 조성된 우동의 나루공원은 10만 70㎡의 면적에 이른다. APEC 기념광장, 야외무대, 조망대, 잔디광장, 분수 등이 있고, 3500m의 산책로와 700m의 조깅코스가 있다. 또한 2006년 부산비엔날레 출품작인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동의 요트올림픽 공원 내 있는 수영요트경기장은 1983년에 건설되었으며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올림픽경기대회 때 요트경기장으로 이용되었다. 360여 척의 요트를 계류할 수 있는 세계적인 시설로 요트대회 뿐만 아니라 요트학교·윈드서핑학교·잠수학교 등 각종 해양레저 강습소와 부산수상항공협회·스킨다이빙협회·우주소년단 등 전문 단체들이 들어서 있다.

우동

해운대구 중남부에 위치한 동(洞)이다. 지명은 현재 해운대의 중심가로 변모한 중동 일대 옛 온천지역인 귀남평원(龜南平原)을 가로질러 동백섬 옆 수영만으로 흐르는 춘천천(春川川)의 오른쪽에 자리한 마을에서 기원하였으며 장지, 못안, 운촌, 승당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있었다. 현재의 해운대고등학교 아래쪽에 형성되었던 장지마을은 농사가 주업이었고, 운촌과 승당마을은 어업을 주업으로 하였다. 한때 이 지역 앞바다는 멸치의 황금어장으로 손꼽혀 4월부터 10월까지 횃불을 따라 몰려드는 은백색의 멸치떼들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못안마을은 못의 안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김해김씨, 김영김씨 집성촌이었는데 이들은 김해 등지에서 임진왜란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와 대를 이어 살게 되었다. 법정동인 우동은 1966년 장지, 못안, 운촌마을이 우1동으로, 승당마을이 우2동으로 분동되었다. 남쪽으로 해운대 관광특구를 비롯한 다양한 관광자원이 있으며 구남벌상가·우일시장·그랜드호텔·조선 비치호텔·대형 할인마트 등 재래시장과 대형 복합건물이 공존하고, 일반주택과 대단위 아파트가 혼합된 주거형태를 이루고 있다.

해운대교육청, 해운대도서관, 해운대전화국, 해운대소방서 등 많은 공공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동

해운대구 동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춘천의 하류에 위치하며 바닷가에 면한 지역으로 온천과 해수욕장 등이 대부분 이 지역에 있다. 해운대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중동이라고 불리는데 구한말까지 대천, 오산, 미포, 신기, 도전, 청사 등의 자연마을을 통칭하여 중리라 불렸다. 1953년 해운대출장소가 설치되면서 중1·2·3동으로 분동되었고, 1955년 중1·2동이 병합되어 중1동이 되고, 중3동은 그대로 남아 있다가 1960년 중2동으로 개칭되었다.

달맞이고개 아래에 있는 작은 포구인 청사포(靑沙浦)는 해운대와 송정 사이에 있는 한적한 갯마을로 당산의 김해김씨 할매의 신격화와 관련하여 푸른뱀이 나왔다는 전설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청사포에 있었던 청사서당은 현 마을 회관 자리에 있었던 의숙(의숙: 공익을 위해 의연금으로 세워진 교육기관)으로 청사포는 물론 새터, 구덕포, 송정, 좌동, 미포, 온천거리 등 인근지역의 학도들은 대부분 이곳을 거쳐 수영, 동래, 부산으로 진학해 갔다.

청사포와 미포는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과 집안에 액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매 4년마다 음력 10월 보름부터 닷새 동안 시행한 별신굿이 유명하다. 현재는 달맞이길을 따라 달맞이어울마당, 청사포, 해월정, 달맞이화랑가, 추리문학관, 고급레스토랑과 AID주공아파트와 고급빌라 등이 어우러진 농·어촌 복합생활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내에는 해운대구청, 해운대보건소와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문학 전문도서관인 추리문학관이 있다.

좌동

해운대구 중동부에 위치한 동이다. 지명은 춘천천(春川川)의 왼편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달맞이 길이 생기기 전에는 해운대에서 송정·기장 방면으로 왕래했던 길목이었다. 이 지역에서 동래부동하면고문서 발견되었으며 이 고문서 중 1924년에 작성된 장산신당 중건 모연문(募緣文)에는 수 백년 전에 신당을 창건하여 매년 정월과 유월 2차례 제사를 지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김해김씨 집성촌인 좌동마을, 좌동마을에서 동쪽으로 군부대 안에 있었던 새실마을, 해발 450m에 위치한 장산마을이 있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부터 탄약창과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많은 지역이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왔으나 1993년 이후 해운대구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해제되고 현재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해운대 관광특구의 배후 주거지역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현재 해운대문화회관 및 다수의 금융기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신시가지가 만들어지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동제(大洞制)를 실시하였다. 2003년 12월 31일 현재의 좌1·2·3동으로 분동하였다.

송정동

해운대구 동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대대로 이 지역에 거주해온 광주노씨(廣州盧氏)의 선조가 해송림이 울창하고 백사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정자를 지은데서 유래하였다. 현재 송정 해수욕장이 있는 일대는 원래 갈대밭이 무성했다고 하여 가래포(加來浦)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덕포(九德浦)마을·송정마을이 있으며 옛날 동래군 원남면(元南面)의 아홉 포구 중 하나인 구덕포는 함안조씨 일가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송정마을은 송정동의 유래가 된 마을이다. 이 지역은 1970년부터 5개년에 걸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어 송정천 일대 늪지대를 매립하면서 22만 여평의 택지가 조성되었다. 송정동은 조선시대 초부터 기장현(機張縣)의 관할이었으나 1800년경 잠시 동래부에 속하기도 하였다. 1880년에 기장현의 전부와 양산군의 일부가 동래군으로 편입되자, 송정 일대는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가 되었다. 1963년에 부산시 동래구 송정동으로 되었고, 1980년 해운대구 관할로 되었다.

이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인 송정 해수욕장은 1965년에 개설되었고 해수욕장 동쪽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죽도(竹島)에는 송정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반여동

해운대구 서부에 위치한 동이다. 지명은 지형이 소반처럼 동그랗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고기등(古器嶝)마을·무정(舞亭)마을·삼어리마을·상리·신촌·중리 등이 있다. 상리는 지금의 풍산금속 입구 지역으로 가장 윗마을을 뜻하고 중리는 가운데 마을로 남평문씨, 청도김씨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삼어리는 봄, 여름, 가을의 세계절 동안 원동천에서 고기가 논다고 하여 삼어리라 하였다. 고기등마을은 옛날에 이곳에서 옹기를 만들어서 붙여진 지명으로 현재 반여1동사무소와 육군기술병기학교 부근에 있던 마을이다. 무정마을은 현재 왕자아파트 주변에 형성되었던 마을로 지명은 이 지역에 있던 오지봉이라는 산에 다섯 손가락으로 거문고를 타고 춤을 춘다는 무정(舞亭: 춤추는 정자)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신촌마을은 현 장산시장이 있는 지역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마을로 새로운 마을이라 하여 신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반여동의 일부는 1972년 부산시의 이주정책으로 시내 고지대 철거민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곳이다. 1973년 반여1·2동으로 분동되었고, 1979년 반여2동이 반여 2·3동으로 분동되었으며 2005년에는 반여 4동이 반여1동에서 분동되었다.

반송동

해운대구 북동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반송(盤松: 키가 작고 가지가 가로 옆으로 뻗은 소나무)이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이 지역에 반석이 널리 깔려있고 송림이 울창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이 지역은 분지지형으로 1740년 편찬된 『동래부지』에 동래부 동면 지경리(地境里)로 기록되어 있고, 『동래부읍지』(1871)에는 반송리로 기록되어있다. 지경리란 현재의 반송이 당시 기장현과 동래부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란 뜻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마을로는 운봉마을·본동마을·신리마을이 있다. 담안골이라고도 불린 운봉마을은 반송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로 운봉산 기슭에 형성되었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본동마을은 반송동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란 뜻이며 가장 나중에 형성된 신리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신작로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마을이다. 이 지역은 1968년 부산시 정책이주지역으로 시내의 수재민과 철도연변 철거민들이 이주하면서 동세가 신장되기 시작하여 1975년 반송1·2동으로 분동되었고, 1978년 반송3동이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대동

해운대구 서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상리·석대·하리 등의 자연마을과 석대천·추마산(일명 석대산)·석산 등의 산이 있고, 대리골·감신골·웅기골 등의 골짜기와 동천교가 있다. 석대마을은 영양 천(千)씨의 집성촌으로 화훼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5효자 1효부 정려각이 있다.

상리 당산과 하리 당산이 위치해 있다. 상리 당산에는 당산나무로 소나무· 느티나무·측백나무의 3그루가 있으며, 하리 당산에는 당산나무로 소나무 1그루가 있는데, 해마다 12월 말에 당산제를 지낸다. 석대동은 법정동으로, 1998년 10월부터 행정동인 반송1동 관할 하에 있다.

재송동

해운대구 남서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래부지』(1740)의 산천조에 보면, “재송포는 동래성의 동쪽 10리에 위치하며, 소나무가 만 그루나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동리명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일명 송수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뒷골마을·재송포마을이 있다. 옛날 재송에는 북쪽에 3계곡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뒷골·서당골·안골이라 하였고, 이 3계곡을 통칭하여 뒷골이라 불러왔다. 뒷골마을은 삼성공파 은진 송씨 문중이 집성하였던 곳으로 송촌이라고도 불렸고 서당이 있었던 자리를 서당골이라고 불렀다. 해운대 경찰서가 있는 지역이 뒷골이고, 삼익아파트 부근 지역이 안골이다. 재송포마을은 재송동의 유래가 된 마을로 현재의 재송동 남쪽 충렬로와 동해남부선 철길 아래까지 배가 드나들었으며, 주변에는 소나무 숲을 이루었다.

1980년 해운대구 설치 때 수영강 이서(以西)의 망미동에 접한 지역은 남구로 갈라지게 되었다가, 1982년 법정동 경계조정 때 재송동의 일부가 반여동과 우동에 편입되었다. 1980년 이후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해 1991년 재송1·2동으로 분동되었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등의 공공기관 소재하고 있다.

참고문헌

『구정백서』(부산광역시사하구, 2008)
『통계연보』(부산광역시해운대구, 2008)
『한국지리지』경상도편 (건설부국립지리원, 2005)
『부산지명총람』(부산광역시, 1995-2002)
『해운대구사』(부산광역시해운대구, 1995)
『부산프리즘』(2008.10.28)
부산광역시 해운대구(www.haeundae.go.kr)
한국관광공사(korean.visitkorea.or.kr)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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