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교제의 네 번째 발표 작품으로 1912년 6월 5일 동양서원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의 원작은 일본 작가 무라이 겐사이〔村井弦齋〕에 의해 1892년 9월 7일부터 11월 15일까지 『우편보지신문(郵便報知新聞)』에 연재된 후 1893년 춘양당(春陽堂)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된 『양미인(兩美人)』이며, 직접적인 주1은 원작의 중국어 번역소설로서 1906년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발간한 『혈사의(血蓑衣)』이다.
이 소설은 악하고 탐욕스러운 관리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김감역 부녀(父女)가 갖은 고난 끝에 재결합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충주 출신 김감역은 북실로 이주하여 정착한 후 근검절약해서 재산을 모으고 가난한 이웃사람들을 구제하는 데에도 앞장서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 직후 탐관오리 정승지는 무고한 김감역을 동학 주2로 몰아 사형에 처한 후 재산을 탈취한다. 이에 김감역의 딸 빙주는 정승지의 목을 베어 아버지의 영정에 바침으로써 복수를 감행한다.
박참위의 도움으로 체포를 피해 도망치던 빙주는 이협판의 조카 옥희와 만나는데, 옥희는 화적을 토벌하던 군인들의 유탄에 맞아 쓰러진다. 빙주는 옥희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이협판의 조카인 것처럼 가장하여 정승지의 숙부 정대신의 추적을 피하고자 한다.
이때 옥희는 죽지 않고 살아서 이협판의 집을 찾아온다. 옥희는 친조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한 성품으로 인해 이협판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빙주를 시기하여 정대신에게 밀고한다. 빙주는 체포될 위기에 처하지만 무당인 삼살방마마의 딸이자 자신의 이복자매인 빙심이 대신 끌려가게 된다. 결국 정대신은 이협판의 상소로 악행이 탄로나 감옥에 갇히고, 사형을 당했던 빙심은 의원 출신인 최생원의 도움으로 소생한다.
한편 죽은 줄 알았던 김감역이 역시 최생원의 도움으로 살아있음을 알게 된 빙주는 마침내 아버지와 상봉한다. 김감역은 무당 일을 그만두기로 한 삼살방마마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고, 빙주는 자신을 연모해 온 박참위와 결혼한다.
이 작품은 오랜 기간 김교제의 창작소설로 알려져 왔지만, 실제로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발표된 원작을 20세기 초 중국에서 번역한 작품인 『혈사의(血蓑衣)』를 대본(臺本)으로 하여 집필된 번안소설(飜案小說)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혈사의』는 인명과 지명의 변화 없이 원작을 충실하게 번역한 데 비해, 『현미경』에서는 한국의 동학농민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삼음과 동시에 인명과 지명을 모두 현지화하고 원작에는 없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났음이 확인되었다.
이 작품은 원작 및 대본에서 형상화되었던, 계급적 갈등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화소를 당대 조선의 현실에 맞게 '봉건 지배계급의 학정에 의한 부친의 억울한 희생'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적 요소를 갖춘 신소설로서 일정한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역시 원작 및 대본에서 차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엽기적인 복수담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선정적 통속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한편 작품의 후반부는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빙심이 사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설정으로 인해, '이산가족의 수난 및 재결합'이라는 모티브를 보여 준다. 이러한 점은 신소설의 전형성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는 원작 및 대본에는 없는 김교제의 개작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