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안중식이 그린 「풍림정거도」는 「도원문진도」과 쌍을 이뤄 제작한 작품이다. 중국 문학작품을 주제로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려낸 일종의 장식산수화이다. ‘단풍나무 숲에서 수레를 멈추다(楓林停車)’라는 제목처럼 키가 큰 단풍나무들이 있는 근경의 좁은 골짜기 사이로 바위에 앉은 선비와 두 명의 시동이 화려한 가을 단풍을 감상하고 있다.
선비와 시동들의 시선이 똑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두목의 시 「산행」 중에서 “수레를 멈추고 앉아 저녁 햇빛에 비친 단풍 숲을 감상하니, 서리 맞은 단풍잎이 2월의 꽃보다 더 붉네(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라는 구절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때 인물의 시선이 멈춘 곳은 단풍나무 숲이며, 이러한 장면은 같은 주제의 회화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도상 표현이다. 인물들 뒤로는 각이 심한 산들이 고원법(高遠法)으로 배치되어 있고, 산 사이에는 구름과 안개가 장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전체 구도는 청 초(淸初) 전통화파인 사왕(四王 : 왕시민(王時敏), 왕감(王鑑), 왕휘(王翬), 왕원기(王原祁)) 산수화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리고 각진 암산의 윤곽선 주변에는 약간 푸른색을 칠하고 안쪽은 갈색으로 처리하여 선경(仙境)의 이미지를 추가한 것, 윤곽선 주변에 먹으로 호초점(胡椒點)을 무수히 가하여 장식성을 배가시킨 것 등은 세트로 그려진 「도원문진도」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사용된 표현기법이다. 이러한 장식산수화의 개척은 1907년 관직에서 물러나 근대적 전업화가로 변신한 안중식이 당시 서화√수요층의 미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에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 작품은 안중식의 빼어난 장식적 표현기법과 문학작품에 대한 남다른 작가적 해석력을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두보의 「산행」을 소재로 삼은 ‘풍림정거도’는 안중식의 작품으로 두 점 더 전하고 그 밖에 이인상(李麟祥), 정수영(鄭遂榮)이 그린 ‘풍림정거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