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이소(耳笑). 충청남도 보령 출생.
1951년 주산국민학교에 입학, 1964년 서울 대동상업고등학교와 1967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9년 육군본부 통신대대에서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후 동아일보 출판부에 일자리를 얻었으나 곧 사직하고, 1974년 (주)태평양화학 홍보실에 입사했으며, 1989년 출판부장이 되었다. 1994년 생업과 시업 중 시업을 택하기로 하고 (주)태평양을 사직했다. 동작구 사당동에 방 한 칸을 마련한 다음 ‘이소당(耳笑堂)’이란 택호를 걸고 시작(詩作)과 독서로 소일했다. 같은 해 한국시인협회 제29회 정기총회에서 사무국장에 선임되었다.
199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시작으로, 1996년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 1998년 서울시립대 시민대학 문예창작과, 2001년 고려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에 시창작 실기강사로 출강했다.
2003년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장에 취임했으며, 같은 해 5월 28일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부인과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1970년 『월간문학』 제6회 신인상에 시 「출항(出帆)」이,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목수(木手)의 노래」가 각각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다. 1975년 이인해, 임홍재, 정대구 등과 ‘육성동인(肉聲同人)’을 결성하여 사화집을 2집까지 펴냈다.
첫 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고려원, 1985년)를 비롯하여, 두 번째 시집 『그림자를 지우며』(현대문학사, 1988년), 세 번째 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세계사, 1992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시집 『고도(孤島)를 위하여』(문학사상사, 1994년), 시선집 『흔들리는 보리밭』(문학사상사, 1994년), 네 번째 시집 『귀로 웃는 집』(창작과비평사, 1997년), 다섯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나는 안다』(민음사, 2000년), 여섯 번째 시집 『시인의 모자』(창작과비평사, 2003년), 시전집 『귀로 웃는 시인 임영조』(천년의시작, 2004년) 등을 출간했다.
그가 다루었던 시세계는 ‘생활’과 ‘자연’이었다. 소재는 일상에서 취하였지만 내용은 항상 인생의 깊은 경지를 추구하여 평이한 시어와 간결한 구문으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의미를 순정하게 형상화하였다.
제23회 잡지언론상(기업사보 부문, 1989년)을 비롯하여 제1회 서라벌문학상(1990년), 세 번째 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로 제38회 현대문학상(1983년), 시 「고도(孤島)를 위하여」 외 10편으로 제9회 소월시문학상(1994년), 타계 후 문학사상사 제정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가에서 보훈문화훈장을 추서했다.
2007년 7월 27일 임영조 시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 충남 보령시 주산면 동오리보령댐 청기와휴게공원에 세운 시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