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강남군 하원암동 출생으로 평양고등보통학교를 1932년에 졸업하였다. 일본의 제국미술학교로 유학을 가서 1938년에 졸업하고, 1943년 10월까지 도쿄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평양으로 돌아와 평양 제2중학교 미술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48년 11월 평양미술대학 학부장과 강좌장을 지내며, 1967년까지 후학을 양성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 1932년 「보통문」을 출품하였고, 1937년 제국미술학교 학생이었던 황헌영은 「연돌있는 풍경」으로 일본 국화미술전에 입선하였다. 1939년에는 일본의 이과전에 「소풍」이 입선하였다.
평양에서 1938년과 1942년에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46년 3월부터 평앙시 미술동맹 부위원장을 지내고, 1946년 8월부터 북조선미술동맹 부위원장을 지냈다. 1961년 10월부터 평양 미술대학 부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만경대 풍경」(1953년), 「봄」(1954년), 「금강산계곡」(1956년), 「금강산 앙지대풍경」, 「저녁의 대동강유보도」(1959년), 「아침의 대동강」(1961년) 등 풍경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풍부한 조형미를 선보였다. 그는 화가들이 풍경화를 시적 감수성으로 표현해야한다고 하면서 조형예술의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주의화된 조국의 문화유산과 자연을 풍부한 감수성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