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보 ()

회화
인물
일제강점기 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미술가로서 「공판」, 「경전차고에서」, 「싸우는 농민」 등의 작품을 그린 미술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8년
사망 연도
1941년
출생지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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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미술가로서 「공판」, 「경전차고에서」, 「싸우는 농민」 등의 작품을 그린 미술인.
개설

일본에서 고학으로 미술학교를 다녔다고 하나 어떤 학교인지 전해지지 않는다. 1925년 8월에 출범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하 프로예맹 약칭)의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7년 평양고무공장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이상대, 강호, 추민, 이상춘, 임화 등과 함께 전단과 벽보 제작을 지원하였다. 1930년에 귀국하여 수원 프로미술전을 주도적으로 개최하였으며 1931년부터 프로예맹 미술부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투옥후 병이 들어 고향 개성에서 염색일을 하며 치료하였으나 1938년 재발하였고 1941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근대시기 프로미술계 작가로 1930년 말에 김용준의 백만양화회 활동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며 노동자, 농민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였다. 일본에 있었던 1929년에는 2회 일본의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NAPF)에서 주최한 '프롤레타리아미술대전람회'에 「조선공산당공판일」을 출품했다.1930년 수원 프로미술전을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국내활동을 전개하였다. 정하보는 노동운동의 특성에 맞는 미술형식을 탐구하는 과정에 목판화 형식이 우월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다량 복제할 수 있는 기동적이며 전투적인 미술 형식으로 판화를 장려하는 실천 활동을 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미술가로서 평강고무공장, 영등포공장 노동자들의 투쟁과 경선전차 종업원들의 집회 등의 전단지, 벽보 등을 제작하여 투쟁의지를 고무시켰다. 그는 미술연구소도 운영하면서 판화형상 방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1930년 3월 29일∼30일 이틀 동안 수원 화성학원 강당(수원성 내 남수리)에서 열렸던 수원 프로미술전을 주도하였는데 박승극, 김규환, 주봉출, 공석정, 차재화 등의 수원지부 맹원들과 함께 준비하였다.

그 성과에 힘입어 그 해 4월 26일에 있던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안석주, 강호와 함께 미술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해 가을에 다시 프롤레타리아미술전람회를 개최하기 위해 8월에 일본에서 귀국하였는데 자신의 작품인 「조선공산당 공판일」을 비롯해 러시아 콘차로프스키, 일본의 야베 토모에, 오카모토 토우키, 요시하라 요시히코 등의 대작을 함께 가져왔으나 전시는 개최되지 못하였다.이때 출품하려했던 그의 작품 「조선공산당공판일」은 50호 정도의 크기로 청색미결수복을 입고 용수를 쓴 조선공산당원들이 공판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진 것이었다.

1934년 박진명, 이상춘 등과 함께 조형미술연구소를 창립하였는데 리얼리즘 회화연구를 목표로 서울 근농동 120번지 건물 2층에 조형화실을 마련하고 그곳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2월 15일 「미술비평의 부진」이라는 글에서 정하보는 프로예맹 미술부의 역량을 소수인원으로 연극 무대장치에 집중한 사정으로 상당히 빈약하고 몇몇의 개인적 활동으로 신문잡지 등에 만화, 삽화 표지 컷 등을 생산한 것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프로예맹 미술부의 확대강화를 위해 학생 및 급진화계층을 상대로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상춘이 체포, 구속되면서 프로예맹 미술부의 활동은 막을 내리게 된다.

1935년 잡지 『예술』에서 예술문제 좌담회에 김기진, 구본웅 등과 함께 참석하여 미술부문에서도 재료와 과정이 다를 뿐 동서양미술에 대한 가치평가란 같은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1931년 투옥되었으며 출소 후 염색업을 하며 고향 개성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했으나 1938년 병이 도져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 「공판」, 「경전차고에서」, 「싸우는 농민」, 「소년피케」, 「섬밖의 녀인들」, 「초가집」, 「농촌」 등이 있으며, 무대미술, 의상도안 및 조명작업도 하였으나 현재 전해지는 작품은 없다.

참고문헌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8)
『조선역대미술가편람』(리재현,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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