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일본 나고야에서 출생하였다가, 해방 이후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부산에 정착하였다. 1954년 부친이 사망하여 가세가 기울자 동국대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하였다. 부산에서 방송국, 신문사 등에 재직하였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와 『국제신문』 논설위원, 그리고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요산문학제의 대회장직을 맡아 문학강연회를 개최하고 요산 생가를 순례하는 등의 행사를 주관하였다. 등단 이후 40여년간 10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작고 직전인 2001년에도 두 편의 장편 소설을 상재하는 등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하다가 2002년 타계하였다.
1957년 단편 「축생도」를 계용묵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발표하였고, 1963년 단편 「사각(死角)」을 오영수 추천으로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71년 부산시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 제3회 요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소설은 대체로 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초기에는 「사각(死角)」, 「이 에덴에서」, 「사족기행」 등의 전후소설을 통해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그려냈다. 이후 정치·사회·경제적인 불평등과 부조리, 가난하고 소외된 농민과 노동자층의 어려운 삶 등을 현실 비판적이고 행동주의적인 시각에서 그려냈다. 단편 「모반」과 「장렬한 화염」은 70년대 노동소설의 출발점에 놓이는 작품들이며, 「천사」와 「월야」, 그리고 「흐르지 않는 물」 등을 통해 부산이라고 하는 특정 지역의 문학화에 주력하기도 하였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두 나그네」, 「LUX비누로 목욕을 하며」, 『얼굴 없는 전쟁』 등을 통해 노인 소외 문제에 천착하기도 하였다. 「오욕의 강물」과 「한수전(恨水傳)」은 일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하였다.
소설 기법의 측면에서 그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직설적 화법으로 일관하였다. 즉 그의 소설은 우회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보다는 정공법의 소설 기법을 선호하였다. 이에 따라 그의 소설은 1인칭보다는 3인칭을 선호하고, 묘사보다 서술에 의존하며, 작가의 목소리에 가까운 논평의 잦은 삽입과 빈번한 사전 제시, 언어적 밀도의 약화 등의 특성을 보여준다.
그밖에 작품으로 「근대주의자」, 「장삼이사전(張三李四傳)」, 「산타클로스는 언제 죽었나」, 「조그만 이야기 하나」, 「신양반전(新兩班傳)」, 「모(母)와 자(子), 그리고 아버지」, 「무인동 1·3」, 「왕과 왕」, 『우리들의 황제』가 있고, 서평으로 「붓의 통곡소리-김정한 저 『낙동강의 파수꾼』」(『창작과 비평』 50, 1978.12)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