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2월 동아일보 50만원 고료 장편 모집에 당선된 작품으로, 1966년창우사(創又社)에서 단행본으로 발행되었다. 이 소설은 강원도 전방부대를 배경으로 하여 정훈장교 현경식 중위와 그의 친구이자 군의관인 구대위, 그리고 부대 인근에 자리한 과부촌의 선경 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입대 전 문학청년이었던 현 중위가 초점 인물이 되어 “지루하고, 듣기 싫구, 역겹더라도 있는 그대루를 그들에게(후방 양반들) 보여줘야겠다”는 결의에 찬 태도로 전방부대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배열해 놓는다. 전방부대에 상존하는 대남선전용 스피커 소리를 소설의 주된 배음(背音)으로 삼는 가운데, 진지 공사와 부대 이동 배치 등의 작전연습(CPX)을 둘러싼 군인들의 힘겨운 일상을 그려내며, 이념 대립의 소산인 과부촌을 중심으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혈육에 대한 기약 없는 기다림과 삶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보여준다.
일찍 등단하였지만 소설 창작에 몰입할 수 없어 군대에 입대한 현 중위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글쓰기를 수행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현 중위는 휴전 이후의 분단 현실을 민족주의와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조망한다. 현 중위는 ‘어딘가 잘못돼 있다. 이 무수한 별개의 개성들을 하나로 만들려는 군대가 말이다.’라며 사병들의 고된 군대 생활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의 인도적인 행위는 사병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술을 사주고, 개인적인 편의를 봐주는 것뿐만 아니라 부대 주변의 민간인들에게로까지 이어진다. 민가에 콜레라가 유행하면서 하숙집 어린 소녀 민혜가 허망하게 죽음을 맞게 되자 그 슬픔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선경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전방부대에 취직하고자 찾아온 여대생들이 결국 양갈보(매춘부)로 전락할 것임을 알려주고 되돌려 보내기도 한다. 또한 사진사로 위장한 간첩을 방첩부대에 신고함으로써 표창장을 받게 되는 이야기, 지하에 숨어 있다가 결국 정신 착란을 일으켜 총기를 난사하는 인민군 이야기를 통해 이념의 허망함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 소설의 문체상 특징은 자연 경관에 대한 묘사가 비교적 적고, 인물들 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저자의 직접 논평과 주석 대신에 보여주기 방식을 주된 서술 기법으로 삼고 있다. 또한 문장을 구사할 때 간결한 단문을 선호하며, 형용사와 부사를 극히 절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 휴전 이후 최전방에 주둔하는 군부대와 그 인근 마을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하여 분단현실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 홍성원의 자전적 체험이 일정 정도 반영된 작품으로, 분단문학(분단소설)의 수작이다. 이 작품은 저자의 소설적 원형을 배태하고 있으며, 한국전쟁에 대한 인도주의 혹은 평화주의적 현실인식은 저자의 대하장편소설 『남과 북』(원제는 『육이오』, 1970∼1975)을 통해 확대 서사화된다. 아울러 이 작품은 병영을 무대로 하는 군대소설의 한 전범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