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1938.5.18∼1939.3.12)에 연재되었다가 그의 사후에 『한용운전집』(신구문화사, 1973)과 『한용운문학전집』(태학사, 2011)에 수록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여주인공 장순영(張順英)의 일대기를 순차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유혹-색주가-결혼-이혼-말년’ 등으로 전개된다. 순영은 일찍 친부모를 여의고 계모의 슬하에서 핍박을 받다가, 수양딸이 되면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송씨부인과 친구 운옥의 유혹에 빠져 상경하게 된다. 순영은 원산항에서 실수로 바다에 빠지게 되는데 한 남자가 그녀의 생명을 구해주자 그에게 보은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서울에 다다르자 송씨부인은 약속과 달리 그녀를 색주가에 팔아넘긴다. 색주가에서 단정한 몸가짐과 성실한 삶을 살다가 생명의 은인인 김대철을 만나 결혼에 이르고 아이까지 낳게 되지만, 경제적 무능력자에다 향락주의에 물든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잃고 홀로 근근이 삶을 살아간다. 이후 마약중독자가 되어 나타난 김대철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다가 죽음에 임박한 순간, 운옥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 김대철이 아니라 환희사라는 절의 여승이었음을 알게 되고, 남편 사후 불가에 귀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장순영은 조선시대의 열녀관념을 구현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다함없는 보은과 자비심의 소지자로 형상화된다. 저자는 도덕 관념을 삶으로 육화한 한 여성을 형상화함으로써, 전형기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원형적·불교적 도덕률을 제시하고자 하나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 다만, 소설의 말미에 체화되지 않은 관념으로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전향을 합리화하는 주의자에 대한 비판이 직설적으로 제시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당당한 대장부로서 무슨 주의니, 무슨 사상이니 하고 천하만사를 자기 혼자서 지도할 듯이 큰소리를 치다가도, 어느 겨를에 찬 재처럼 죽어져서 아침의 지사志士가 저녁의 천賤장부로, 어제의 주의자가 오늘의 반대주의자로 변하여서, 자기 일신의 이해와 고락만을 따라서 변하는 도수가 고양이 눈보다도 더 심하지 아니한가.”라는 대목에서 이 소설의 창작 동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문체는 서술자의 전지적·주석적 논평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고, 사설체의 긴 문장[長文]을 애용하고 있으며, 묘사가 상투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은 불교의 인연설과 인과응보 사상, 그리고 자기희생을 토대로 한 자비심의 발현 등 한용운의 도덕적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이다. 계모형 설화 모티프와 인신매매 모티프를 애용하는 등 고소설과 신소설의 서사적 전통을 반영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 창조에 있어서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고, 이야기의 전개에서 드러나는 개연성이 없는 플롯, 즉 우연성의 남발과 순차적 사건 배열, 소설 문장에 나타나는 수사적인 과장 등의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근대 서사적 원리보다는 시적 자세를 구현한 소설, 일종의 도덕적 우화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