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웅천 출신으로 615년에 태어났다. 조부는 좌평 예다(譽多)이고, 부친은 좌평 사선(思善)으로 2대에 걸쳐 좌평을 역임한 명문 가문 출신이었다. 2006년예식진묘지명(禰寔進墓誌銘)이 발견되어 그의 일생이 알려졌다. 묘지명은 중국 하남성 낙양시에 있는 낙양이공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660년 백제 멸망 당시 북방성(北方城) 웅진의 방령(方領)이었다.『구당서(舊唐書)』와『삼국사기(三國史記)』등에는 예식(禰植)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예식진과 예식은 같은 인물이다. 660년 7월 13일 의자왕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공격을 피해 사비성(泗沘城)에서 웅진성(熊津城)으로 피난오게 되었다. 이때 예식진은 의자왕을 도와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7월 18일에 이미 함락되어 나당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던 사비성으로 의자왕을 사로잡아 끌고가서 당군 원수 소정방(蘇定方)에게 바쳤다. 예식진의 이러한 배신으로 의자왕은 당군에게 포로가 되었고 백제는 저항의 구심점을 잃고 멸망하게 되었다.
이후 예식진은 당에 들어가 당 고종으로부터 궁정의 경비와 호위를 담당하는 정3품의 좌위위대장군(左威衛大將軍)에 제수되었다. 672년 5월 오늘날 중국 산동성 용구시인 내주(萊州) 황현(黃縣)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 고종의 조서(詔書)로 같은 해 11월 21일장안성 남쪽의 고양원(高陽原)에 묻혔다.
당나라에서 내원현개국자주국(來遠縣開國子柱國)의 훈관(勳官)을 받았다.